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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공주] 강당 건물이 특이해서 더 기억하기 좋은 절집, 계룡산 갑사

[충남 공주] 강당 건물이 특이해서 더 기억하기 좋은 절집,

계룡산 갑사

 

 

갑사...

내게는 추억이 어린 절집이다.

아주 오래 전인 30년도 더 전일 때,

친구들과 함께 동학사에서 시작하여 갑사로 넘어가는 산행을 했었다.

아직도 당시의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의 답사기는 미흡하지만 다음 장에 옮겨 볼 생각이다.

 

주차장은 절 한참 아래에 있었는데, 아주 넓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있는 걸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참 오랜만에 다시 찾는 곳... 옛 추억을 더듬으며 갑사로 향했다.

요즘엔 워낙 절집의 규모가 커지는 추세라서

옛 기억과는 전혀 다른 곳일까 봐 살짝 염려를 하면서...

주차장과 닿은 물길을 건너니 괴목단이 보였다.  

 

 

괴목단

갑사 입구의 괴목단.

이 느티나무 괴목은 이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는 괴목대신제(槐木大神際)가 열리는 곳.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이 느티나무는 임진왜란 당시에 승병들이 모여 작전을 의논한 곳이라고 하며

태풍으로 부러져 지금은 밑동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나의 옛 기억에는 없는 나무...

 

 

갑사 가는 길의 먹거리장터

왼쪽으로 장승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는 먹거리장터를 통과하지 않고 바로 갑사로 가는 길이다.

30년 전(정확히는 31년 전) 옛 기억을 더듬자면 갑사는 동학사에 비해 사람들이 덜 찾는 참 한적한 절이었고,

주변에 음식점도 별로 없었던...

  

 

매표소

먹거리장터를 지나면 곧 매표소에 닿는다.

31년 전 당시에는 입장료도 없었던 것 같은데.....아무튼...

매표소 벽에는 갑사의 문화재 등 사진을 붙여 놓았다.

그걸 보면 참 많은 문화재를 지닌 절집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일주문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계룡산 갑사'라는 현판이 붙은 일주문이 있다.

 

 

갑사 자연관찰로 안내도

갑사로 올라가는 메인 도로 옆 숲길은 자연관찰로로 각광을 받는 곳...  

 

 

갑사 가는 길은 녹음이 우거져 시원함을 준다.

 

계룡산 갑사매표소~갑사~대적전~갑사탐방지원센터에 이르는 2km 구간의 갑사 오리숲길은

사계절 내내 장관을 이룬단다.

봄에는 전국 최대규모의 황매화군락지를 자랑하며,

여름에는 계곡의 맑은 물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져 시원한 숲길을 만들어 내어

삼림욕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또한 참나무와 느티나무등 수 백 년 된 고목들이 줄지어 늘어선 갑사 오리숲길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단다.

춘마곡 추갑사라 하지 않았던가!

추갑사라는데 나는 여름에만 가게 되네... 나는야 하갑사에만 갔네.

 

갑사 자연관찰로

 

특별나게 보이던 화장실

 

 

갑사 전각배치도

 

 

범종루. 새로 지은 누각으로 사물이 걸려 있다.

강당 건물 앞쪽으로 범종보호각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갑사강당 (甲寺講堂)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

 

갑사는 계룡산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의 사찰로,

백제시대에 아도화상이 처음 지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크게 다시 지으면서 신라화엄 10찰의 하나가 되었다.

해탈문과 대웅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강당은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뒤로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의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를 짰는데,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단청은 완전히 퇴색되어 무늬의 흔적만 남아 있으며,

문짝은 많이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절도사 홍재의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출처 : 문화재청)

'계룡갑사'라는 현판이 붙은 강당 건물.

이 건물을 보니 옛 기억이 단번에 났다. 건물이 좀 특이하다 보니...

 

당시엔 단청이 퇴색되어 엷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주 고운 상태였다.

새 단청을 한지 오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때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고,

위덕왕 때 혜명대사가 크게 확장했으며,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선조 때 중건,

효종 때 크게 증축했단다.

문화재를 많이 간직한 사찰이기도 하다.

 

 

대웅전

 

강당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가운데 맞은편으로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진해당, 오른쪽으로 살짝 보이는 곳이 적묵당.

 

 

갑사대웅전 (甲寺大雄殿)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지을 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가운데 3칸은 기둥 간격을 양 끝칸 보다 넓게 잡아 가운데는 공포를 2개씩, 끝칸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되어있고, 불단을 만들어 석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갑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출처 : 문화재청)

 

 

 


 

 

 

 

갑사소조삼세불 (甲寺塑造三世佛)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5호

 

갑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세불로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높이 255㎝로 둥근 얼굴에 백호가 조각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법의는 통견으로 소조좌불이다.

우측에는 아미타불(높이 235㎝), 좌측에는 약사여래(높이 235㎝),

그리고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등 4대 협시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대웅전의 소조삼세불 

 

 

공주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 및 복장유물 (公州 甲寺 釋迦如來三世佛圖 및 腹藏遺物)

 

보물  제1651호

 

공주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는 18세기 초, 중반 전라도를 중심으로 경상과 충청 지역에서 활동한

당대 대표적 화사인 의겸(儀謙)이 제작한 불화이다.

현재까지 작품을 비롯하여 화기, 사지, 발원문 등을 통하여 알려진 의겸의 작품은 39건으로

그 가운데 현존하는 불화는 21건 30점이며

작품을 통해서 볼 때 그의 활동 시기는 대략 1713년에서 1757년 무렵까지 약 40여 년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길이 4m에 이르는 3폭 형식의 삼불도는

갑사 삼세불도를 비롯해 운흥사 삼세불도, 화엄사 삼신불도 등 3건에 불과하며,

조선후기를 통틀어서도 이러한 대형의 3폭 삼불도 형식의 예는 희귀한 편이다.

비록 약사회 1폭은 없어졌지만, 450cm에 육박하는 대형의 화폭에

각 설법장면을 세련되고 유려한 필치, 짜임새 있는 구도와 조화롭고 안정감 있는 색채로

부처의 세계를 장엄하게 묘사한 18세기 전반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판단되었다.

특히 이 불화는 의겸의 초기화풍에서 후반기 화풍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있는 작품으로

그의 화풍연구에 있어서도 대단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이와 더불어 1730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불화복장을 남기고 있어

불상복장과 함께 불화 복장 의식을 연구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삼세불 뒤의 탱화.

3폭 중 약사회 1폭은 없어졌단다.

 

 

진해당

 

 

적묵당

 

국보인 갑사삼신불괘불탱 전각 불사 중이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갑사삼신불괘불탱 (甲寺三身佛掛佛幀)

 

국보  제298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진리를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그림은 길이 12.47m, 폭 9.48m의 크기로 전체적으로 상·중·하 3단 구도를 이루고 있다.

맨 윗부분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 제자상, 금강역사상 등이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묘사되어 있고,

맨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 사천왕상, 사리불 등이 있다.

가운데부분의 비로자나불은 등뒤로 광배를 가지고 있으며

둥근 얼굴에 두 어깨를 감싼 옷을 걸치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큰 얼굴과 큼직한 손에 비해 몸은 다소 왜소하며 어깨에 비해 무릎 폭이 넓은 모습이다.

비로자나불의 왼쪽에 있는 노사나불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석가불은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의 손모양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은 기둥처럼 솟은 특이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맨윗부분은 붉은 색의 두광을 가진 관음·세지보살과 십방제불, 나한 등이

화려한 빛깔의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천상세계를 만들고 있다.

비교적으로 단순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맨아래부분은

사천왕과 문수보살·보현보살, 사리불이 배치되어 있다.

채색은 녹색, 홍색, 황색과 같은 중간 색조와 금으로 채색하여 화면 전체를 밝고 화려하게 나타내었다.

이 괘불은 효종 원년(1650)에 제작되었는데 중단의 삼신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또한 그림에 괘불 조성에 필요한 많은 물품의 시주자를 적어놓고 있어

17세기 중반의 생활상과 사찰의 재정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출처 : 문화재청)

 

 

강당

대웅전쪽에서 본 강당.

앞마당에는 잔디를 곱게 깔아놓았다.

 

 

갑사삼성각 (甲寺三聖閣)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3호

 

삼성각은 칠성·산신·독성의 삼성을 모신 곳이다.

건물 이름이 삼성각 인 이유는 모두 불교 밖에서 수용한 신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한다.

칠성은 도교의 북두칠성이 불교화한 것으로 수명장생을 주관하는 별이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난 만사형통의 신이며,

독성은 혼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각각의 건물을 따로 지어 삼성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삼성각 안에 같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문화재청)

 

대웅전 옆으로 자리한 삼성각...

마당 앞으로 수국이 사알짝 고개를 내민다.

 

 

삼성각쪽에서 본 대웅전.

여름날의 사찰에는 배롱나무 한두 그루쯤 꽃이 피어 반기는 일이 대부분인 듯...

아~~ 지리산 대원사에도 배롱나무에 꽃이 한창이겠다!

 

 

 

 

 

대웅전 옆에서 본 강당

 

 

대웅전 앞마당 가운데에는 네모진 자그마한 연못이 하나...

 

 

강당

강당

 

 

진해당과 대웅전

 

 

진해당과 대웅전.

이곳에서 발길을 표충원쪽으로 돌렸다.

날은 흐리지만 얼마나 더운지...

옆지기는 더위에 지쳐서 안 가겠다고 한다.

나도 힘들었지만 혼자서 더위를 막아가며 표충원으로 향하였다.

 

 

갑사표충원 (甲寺表忠院)

 

충남 문화재자료 제52호

 

표충원은 영조 14년(1738)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내부에는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영규대사비

 

 

갑사팔상전 (甲寺八相殿)

 

충남 문화재자료 제 54호

표충원 윗쪽으로 팔상전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 팔상() 그림 존상() 봉안한 법당.

 

팔상전 안의 팔상탱화

 

석가모니불

 

팔상전 안의 팔상탱화

 

 

 

보장각

표충원과 팔상전 앞길 맞은 편으로 보이는 전각이다.

 

보물로 지정된 '월인석보' 판본이 보관되어 있다는... 

대웅전 옆과 진해당 뒤로 난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지만

출입금지구역이다.

 

 

신보장각

성보 문화재를 보관하는 곳이란다.

아랫쪽으로 내려가면 사적비와 부도군이 자리하고 있다.

 

 

갑사사적비 (甲寺史蹟碑) 

갑사의 창건 과정과 역사를 적은 비이다. 

 

 

다시 강당쪽으로 돌아와서...

강당과 아치형문.

아치형문은 통행의 위험 때문에 저녁에는 문을 닫는다.

 

 

동종보호각

  

갑사동종 (甲寺銅鐘)

 

보물 제478호

 

갑사동종(甲寺銅鐘)은 조선 초기의 종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매달 목적으로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졌다.

높이 131㎝, 입지름 91㎝로 전체적으로 어깨부터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중간 지점부터 입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종 꼭대기에는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다.

종의 어깨에는 물결모양으로 꽃무늬를 둘렀고,

바로 밑에는 위 아래로 나누어 위에는 연꽃무늬를,

아래에는 범자를 촘촘히 새겼다.

그 아래 4곳에는 사각형모양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는 가운데가 볼록한 연꽃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종의 몸통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따로 두었고,

그 사이에는 구름위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서 있다.

종 입구 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둘렀다.

이 종은 일제시대 때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 갑사로 옮겨온, 민족과 수난을 같이 한 종이다.

(출처 : 문화재청)

 

 

 

 

 

 

동종각에서 본 풍경.

뜨거운 여름날의 열기를 거북약수가 잠시 식혀준다.

 

 

갑사석조약사여래입상 (甲寺石造藥師如來立像)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

갑사 동쪽 계곡 약 100m 지점의 자연 동굴 안에 있는데,

원래는 갑사 뒷산의 사자암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고 얼굴은 긴편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을 약간 노출시키고, 무릎 아래까지 늘어져 있다.

가슴 아래로는 반원형의 옷주름이 표현되었고,

왼쪽 어깨 부근에서는 한 가닥의 주름이 어깨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손모양을 살펴보면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구성미와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갑사석조약사여래입상을 본 후 대적전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위쪽에 위치한 내원암과 대성암은 남겨두었다.

혼자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날은 흐려도 더위가 말도 못할 지경이니 어찌 강요할 수 있을까~~~

 

대적전 가는 길에 전통찻집 건물이 보였는데, 공사 중이었다.

그곳은 일제강점기에 친일파 윤덕영이 간성장이라는 별장을 지은 곳이다.

별장 뒤로 계곡이 이어지는데, 계곡을 따라 갑사구곡이 있다.

절경 주위의 바위에 구곡을 새겨 놓은 것...

 

 

갑사구곡

갑사구곡 안내도 

 

갑사구곡 계곡.

물소리에 잠시 더위가 잊혀지는 듯...

 

전통찻집을 지나고 계곡의 다리를 건너니 공우탑이 보인다.

공우탑이 무엇일꼬?

 

 

공우탑

말하자면 소의 공을 기리는 탑이다.

백제 비류왕 때 갑사에 속한 암자를 건립했는데

건축 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냇물을 건너다가 죽자

그 넋을 위로하고자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탑이란다.

본래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윤덕영이 후세의 영화를 기대하며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바로 앞에는 갑사구곡 중 5곡인 '금계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아래로는 시원한 물줄기가 이어진다.

조금 더 걸으니 대적전이 나타났다.

 

 

갑사대적전 (甲寺大寂殿)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갑사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석가모니·아미타불·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원래의 금당지 옆에 있던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공포가 2개이며, 양 끝칸은 1개의 공포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석가모니불 위에 천장을 한단 올림으로써 닫집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출처 : 문화재청)

 

대적전, 왼쪽 옆은 요사

 

원래의 갑사 자리가 이 부근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단다.

 

오래 묵은 배롱나무가 긴 세월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듯...

 

대적전 앞에는 갑사승탑이 한 기 자리하고 있다.

배롱나무꽃이 만개할 때면 더 아름다운 모습일 텐데...

 

 

공주 갑사 승탑 (公州 甲寺 僧塔)

 

보물  제257호

 

갑사 뒤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17년 대적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대담하게 조각하였으며,

거의 원에 가까운 가운데받침에는 각 귀퉁이마다 꽃 모양의 장식이 튀어나와 있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새겨 놓았다.

탑신을 받치는 두툼한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둘러 새겼다.

탑 몸돌 4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새겨 놓았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기왓골을 표현하는 등 지붕 모양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으며,

후에 새로 만든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힘차고 웅대하나, 윗부분으로 갈수록 조각기법이 약해졌다.

특히 지붕돌이 지나치게 작아져 전체적인 안정감과 균형을 잃고 있다.

기단부의 조각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전체에 조각된 각종 무늬와 기법 등은 고려시대 승탑들 중에서도 우수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출처 : 문화재청)

 

 

 

아랫단의 조각 표현이 힘차고 굵직굵직한 느낌이 든다.

 

섬세한 듯 하면서도 대담하며 남성미가 느껴지는 모습...

나름 수작이다.

 

승탑을 통과하여 계단을 내려가니 아랫쪽으로 우뚝 솟은 철당간이 보였다.

아~ 이것도 다시 보고 싶었던 것...

 

 

공주 갑사 철당간 (公州 甲寺 鐵幢竿)

 

보물  제256호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 문화재청)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란다.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이다.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갑사 철당간을 끝으로 오래 전 기억을 더듬은 갑사 답사를 끝냈다.

갑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화재로는 철당간과 강당을 꼽고 싶다.

더위 탓에 더 올라가야 만나는 곳을 남겨두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대충 본 셈...

다음 포스팅은 30년 전 계룡산 산행 기록이다.

 

* 갑사 주소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2013.08.2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