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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논산] 지나간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개태사 - 석조여래삼존입상, 철확, 오층석탑

[충남 논산] 지나간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개태사

                - 석조여래삼존입상, 철확, 오층석탑

 

2013.07.31(수)

 

충남 지역 여행 3일째...

논산의 개태사, 공주의 신원사와 갑사를 탐방하기로 하였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백제를 평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절이라고 한다.

현재의 위치는 세종 때 옮긴 것이라고 한다.

참 오래 전에 들르고 이번에 다시 들렀었는데, 절집이 더 들어서 있어서 조금 낯설었다.

다만 절 입구에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이 예전 느낌이 들어서 다행이었다.

 

현재의 개태사. 왼쪽이 삼존불이 모셔진 극락대보전. 뒷쪽 청기와 건물이 정법궁.

 

 

개태사 입구.

이 길은 아주 오래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비가 내려서 더 싱싱해 보이는 수련을 만나고 다리를 건넌다.

 

 

전에 없던 절담도 생겼다.

 

 

경내로 가는 길...

 

 

개태사 경내

 

 

정법궁 앞에는 삼성 리움 미술관 소장의 개태사 금동대탑을 돌려달라는 입간판을 세워 놓았다.

 

 

개태사오층석탑 (開泰寺五層石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

 

개태사는 고려 태조 13년(930) 고려 건국을 기념하고자 창건한 사찰로, 이후 폐허가 되어 절터만 남아있던 것을, 훗날 김광영 스님이 새로 건물들을 지어 ‘도광사’라 하였다가 다시 ‘개태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절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이 탑은 옛 터에 남아 있었는데, 절을 새로 지을 때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옮길 당시 아래 부분이 일부 없어져 완전한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즉, 높직한 바닥돌 위로 기단(基壇)이 없어진 채, 5층의 탑신(塔身)만이 차례로 쌓여 있다.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에는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비록 일부가 없어져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나, 조각 기법이 소박하고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출처 : 문화재청)

 

 

오랜 세월을 견뎌온 석탑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어진을 모신 전각이 새로 생겼다.

 

안에는 고려 태조 왕건 진영을 모셔 놓았다.

 

 

극락대보전

석조여래삼존입상을 모신 극락대보전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論山 開泰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

 

보물  제219호

 

개태사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태조 19년(936) 격전지에다 세운 사찰이다. 이 삼존석불은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민머리에 얼굴이 둥글지만 평면적이고 귀는 길게 늘어졌다. 어깨와 가슴은 투박하게 만들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왼손은 배에 대어 무엇을 잡은 것처럼 만들었는데 지나치게 둔중하다.

왼쪽의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없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본존불보다 조각이 화려하고 섬세한 편으로, 어깨와 가슴이 좀더 부드럽고, 팔찌와 천의(天衣)자락에 장식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보살상은 왼쪽의 보살상과 거의 같은 수법으로 얼굴이 역사다리꼴이고, 목에는 두터운 삼도(三道)가 있다.

단정하면서도 통통한 몸집, 큼직한 두 손과 부피감 있는 팔, 다소 두꺼워진 천의와 선으로 새긴 옷주름 등은 통일신라보다 진전된 고려 초기의 새로운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만든 작품이며, 고려 초기 지방 석불상으로는 우수한 작품에 속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출처 : 문화재청)

 

극락대보전 안의 석조여래삼존입상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는 석조여래삼존입상

 

 

요사채

 

 

정법궁. 심전 안중식이 그렸다는 단군 영정이 모셔져 있다.

 

 

나반존자를 모셨다는 삼일지상정천궁과 철확이 있는 우주정 

 

 

개태사철확 (開泰寺鐵鑊)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호

개태사는 고려 태조인 왕건이 세운 사찰로, 철확은 이곳 주방에서 사용했다고 전하는 철로 만든 대형 솥이다.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지름이 약 2m, 둘레길이 6.28m, 높이 97㎝이다. 조선시대에 절이 없어지면서 벌판에 방치된 채 있던 것을, 가뭄 때 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온다고 하여 여러 곳으로 옮겼다가, 일제시대 때 서울에서 열린 박람회에 출품된 후 새로 건립한 지금의 개태사에서 보존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우주정의 개태사 철확

 

* 개태사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111번지

* Tel: 041-734-8730, 041-734-8731

 

개태사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29-1외 3필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세력을 완전히 물리친 후, 태조 23년(940)에 지은 절이다.
당시 절 안에는 태조의 초상화가 있어서 나라에 전쟁의 기미가 있으면 그 앞에 기원문을 올려 나라가 태평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절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왜구의 빈번한 약탈에 의해 차츰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위치는 세종 10년(1428)에 옮겨진 것으로, 개태사 안에는 개태사지삼존불상(보물 제219호)이 있고, 이외에도 석탑과 쇠솥이 있다. 전성기에 장국을 끓였다고 전해지는 이 쇠솥은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에 이를 정도여서 수백명의 승려가 기거했다는 전설을 사실로 뒷받침하고 있다. 건물 자리와 주춧돌, 석조, 불상의 대좌, 죽대들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제 반자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절터에 있었던 석조불좌상 1구는 상방산의 한 암자에 안치되어 있다.
개태사터 일대는 삼국시대 후기 신라군이 당과 동맹을 맺고 백제를 공략할 때 통과한 진격로로, 백제의 계백 장군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근처 황산벌에서 신라와 최후의 전투를 벌였던 장소로 유명하다. 그후에도 군사·교통의 요충지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또한 주변에는 사찰을 지키기 위해 만든 약 6㎞에 달하는 토성이 있다.

(출처: 문화재청)

 

2013.07.31(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