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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전북 익산] 익산 왕궁리 유적 (益山 王宮里 遺蹟)

 

[전북 익산] 익산 왕궁리 유적 (益山 王宮里 遺蹟)

 

익산 왕궁리 유적 (益山 王宮里 遺蹟)

 

사적 제408호

왕궁리성지 라고도 부르며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발굴조사한 결과, 이 유적은 적어도 세 시기(백제 후기∼통일신라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가마 2기를 발견했다. 특히 탑을 에워싼 주변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평지성으로 생각되는 성곽 유물을 찾았다.
성곽의 모습은 현재 발굴을 통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또한 성곽 안팎으로 폭이 약 1m정도로 평평한 돌을 깔아 만든 시설이 발견되어 성곽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지역 안에 있는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289호)과 절터의 배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성이 발견되어, 백제 후기의 익산 천도설이나 별도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왕궁리유적 → 익산 왕궁리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문화재청)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 나와 유적지쪽으로 가는 길이다.

넓은 백제 광장 왼쪽으로 터를 향해...

왕궁리오층석탑이 보인다.

 

남쪽 궁궐 담장과 남쪽 중앙 문이 있던 곳을 지나며...

문은 동, 서, 북쪽에 각각 1개씩, 남쪽에는 3개의 문터가 발견되었단다.

 

궁궐을 둘러싼 담장은 동서 약 240m, 남북 약 490m의 직사각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담장의 폭은 3m 정도, 아래에 잘 다듬은 석재를 쌓아 올려 만들었다.

담장 안팎으로 돌을 깔아 보도를 만들었다.

 

 

 

 

 

 

 

 

 

 

대형 건물터. 

 

오층석탑 앞의 대형 건물터.

왕궁리 건물터 중 가장 큰 크기로 정면 7칸(31m), 측면 4칸(15m)의 규모.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개듀모 집회나 연회 등에 사용한 건물로 추정됨.

 

 

 

 

왕궁리오층석탑

 

 

 

 

 

 

 

남북 방향 석축 

 

 

 

건물터와 석탑 

 

 

 

 

 

금당터

 

 

금당터와 석탑

 

 

 

 

 

강당터

  

앞에서부터 강당터, 금당터, 석탑 

 

강당터, 금당터, 석탑 

    

 

 

건물터와 석탑 

 

 

여러 건물터와 석탑 

 

 

  

건물터와 후원 구역

 

 

 

석축 

  

 

 

건물터

 

 

  

배수로 

 

배수로 

  

 

 

석탑에서 본 풍경.

앞에서부터 건물터, 금당지, 강당지, 후원 구역 

 

 

2013.02.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