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왕궁리유적전시관 1
참 오랜만에 익산 왕궁리를 다시 찾았다.
왕궁리오층석탑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커다란 전시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에 왕궁리를 찾았을 때는 주변에 풀이 무성하고
그곳에 달랑 오층석탑이 하나 서 있을 뿐이었는데,지금 이 유적지엔 커다란 유적전시관이 들어서 있어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재조명하고 있다.
왕궁리유적과 오층석탑을 관람하려면
이 유적전시관에서 먼저 여러 가지 자료를 보고 설명을 들은 후에
왕궁리유적과 오층석탑을 관람하는 것이 좋다.
사적 제408호인 왕궁리유적은 백제 무왕대에 왕궁으로 건립되었는데,
후대에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이 건립된 것으로 확인된 곳이다.
왕궁리오층석탑은 왕궁에 사찰이 들어서면서 세워졌던 건축물의 일부로
석조 문화재라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 왕궁리유적전시관 >
왕궁리유적전시관은 왕궁리유적 출토 유물을 전시하고 문화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왕궁리5층석탑이 위치한 왕궁리유적 남쪽에 설립된 전시관이다.
1989년 발굴 시작
2001년 문화재청으로부터 전시관 건립 계획 승인
2002년 전시관 건립 공사에 착수
2008년 12월 23일 개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영상실 등의 전시시설이 갖춰져 있다.
상설전시실에서는 '백제 왕궁 왕궁리 유적', '왕궁리 유적의 백제 건물', '왕궁의 생활',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백제왕궁' 등 5개 분야로 나뉘어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공방에서 생산된 금·유리 세공품과 왕궁 지붕의 연꽃무늬 수막새, 수부(首府)라고 찍힌 기와,
왕궁에서 쓰던 토기류, 사찰 관련 기와류 등 약 300점이 전시되고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왕궁리 유적의 어제와 오늘', '왕궁리5층석탑 해체 보수' 등의 기획전이 열렸다.
관람객들을 위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 기와 만져보기,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목판 찍기, 유물 이미지 스탬프 찍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금제품,유리제품과 이를 생산하던 각종 도가니, 인장와, 명문와, 수막새, 전달린토기,
완,합, 등잔, 대형토기 등 왕궁리유적 출토유물 약 1,400여점 소장 중...
* 관람 : 09:00~18:00(휴관일: 1월 1일, 매주 월요일, 전화 859-4632, FAX 859-4639)
* 주소 : 570-943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왕궁리 562)
입구에 들어서면 옛날 중국 양나라의 화첩인 양직공도에 그려진 백제 사신의 모습.
6세기에 그려진 원본을 북송 시대에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백제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란다.
백제인의 모습.
양직공도에 그려진 백제 사신을 바탕으로 모습과 의복을 재현한 모습
백제 무왕대의 왕궁지, 왕궁리 유적...
조사 결과 왕궁리유적은 백제 무왕대에 왕궁으로 건립되었는데,
후대에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이 건립된 것으로 확인된 곳이다.
백제 왕궁터는 우리나라 고대 왕궁으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 담장과 함께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건물지를 비롯한 14개의 백제 건물지와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 금, 유리, 동 등을 생산하던 공방지,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화장실 유적 등이 조사되어
왕궁의 축조 과정과 왕궁에서의 생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사적 제408호.
궁성은 남북 490여m, 동서 240여m 정도의 장방형 구조로 2:1의 비율.
앞쪽인 남쪽은 중심거주 공간으로, 뒷쪽인 북쪽은 후원의 성격으로 조성되었다.
서북편에는 공방지가 들어서서 왕실의 물품들을 생산하였고,
주변에는 대형 화장실이 있었음이 발굴 조사 결과 드러났다.
백제 말경에는 이곳에 사찰이 들어서서 통일신라말기까지 지속되었다.
원래 이곳에는 목탑이 건립되었으나 소실되었고
통일신라 시대에 왕궁리오층석탑이 세워졌다.
백제 말경에는 사찰이 들어서서 통일신라말기까지 지속.
목탑이 건립되었으나 소실, 통일신라 시대에 왕궁리오층석탑이 세워졌다.
서북편의 공방지. 왕실의 물품들을 생산.
주변에는 대형 화장실 유적이 발굴되었다.
왕궁리유적에서 발견된 백제 수막새(수키와
암키와
도장기와(인장와)
대형 항아리
무왕은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제석사지 창건, 익산토성을 비롯한 토성 축성 등을 통해 왕권 강화에 힘썼다.
재위 기간은 42년.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 익산 지역에서 강력한 왕권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 찾아가는 길
2013.02.17(일)
'방랑, 그 흔적들-국내 > 광주 전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북 익산]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益山 古都里 石造如來立像) (0) | 2013.03.16 |
---|---|
[전북 익산] 국보 제289호 왕궁리오층석탑 (0) | 2013.03.16 |
[전북 익산] 익산 왕궁리 유적 (益山 王宮里 遺蹟) (0) | 2013.03.15 |
[전북 익산] 왕궁리유적전시관2 (0) | 2013.03.14 |
[전북 익산] 익산 왕궁온천과 전주 현대옥 (0) | 2013.03.13 |
[전북 임실] 옥정호 드라이브길, 붕어섬과 운암대교가 보이는 풍경 (0) | 2012.10.24 |
[전남 장성] 장성8경 중 제3경이라는 장성호 (0) | 2012.10.23 |
[전남 장성] 축령산 휴양림= ‘장성 치유의 숲’...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나무 숲 (0) | 2012.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