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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태안 안흥성 (安興城)과 태국사

 

태안 안흥성 (安興城)

 

신진항과 안흥항 답사길에 안흥성에 들렀다.

성문 옆 입구에 차를 대고 성문을 이리저리 살피며 두리번거리니

작은 초소에서 한 분이 나오신다. 해설자분이셨다. 

날은 춥고 오가는 이는 별로 없는 한적한 시골 산성...

나같은 나그네가 반가운지 설명을 해 주시겠단다.

옆지기 잡아끌며 가까이 가니 안으로 들어오란다.

너무 추우니 한기라도 면하라는 고마운 말씀이셨다.

안이라고는 하지만 춥기는 매 한가지... 바람만 면할 뿐...

찾는 이가 거의 없는 그곳에서 근무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겠다 싶으면서

안타깝기도 하면서~~~

안흥성은 조선 효종 때 축조된 석성으로 둘레가 1.5km에 이른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어 관리 중인데,

동학혁명 때 폐성되었다고 한다. 

해설자님의 축성 이야기며 그 시대 이야기며 듣고서 답성을 시작하였다. 

대충 둘러보는 정도였으니 답성이랄 것도 없었지만...

산성에는 아직도 여러 채의 민가가 있고 산꼭대기에는 태국사가 있었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1호 안흥성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해안의 안흥마을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본래 ‘안흥진성’이었으나 보통 안흥성이라 부르고 있다.

이 곳은 조선시대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며,

또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성의 둘레는 약 1500m이고, 성벽의 높이는 3∼4m이다.

조선 효종 때 경기도 선비인 김석견이 성을 쌓을 것을 바라는 상소를 올리자,

'이 지역은 바닷가에서 10여 리 튀어나와 있는 천연의 요새지이므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양식을 저장하면 훌륭한 진영이 될 것이다'라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당시 인근지역 19개 군민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
동·서·남·북 4곳에 설치한 성문의 형체가 뚜렷하게 남아있어,

당시 성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문은 수성루, 남문은 복파루, 서문은 수홍루, 북문은 감성루라 하였는데,

현재는 입구만 남아 있다.
성안에는 20여 호의 가구가 살고 있으며,

성안 동문쪽에 영의정 김우근의 불망비와 비각이 있다. (문화재청)

 

 

 

 

 

 

 

 

 

 

 

 

 

 

태국사 

 

 

 

 

 

 

 

 

 

태국사에서 내려다본 신진대교와 주변 모습

 

2012.03.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