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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畵)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畵)

 

 

청송사지 부도도 망해사지 부도도 포기하고 반구대 암각화 가는 길~

날은 서서히 저물어가는 시점인지라 자꾸 귀경길을 재촉하는 옆지기, 그 말을 허투루 들으며 올라가는 길에 있는 두 곳의 국보를 보고 가자며 졸랐다. 그렇게 따지자면 그런 곳이 어디 한두 곳이던가! 올라가는 길목이란 말에 조금은 안심을 하면서 나를 데려다준다. 아무튼 작전 성공...

 

암각화전시관.

가는 날이 장날... 월요일은 휴관이다. 휴관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실 여길 들를 시간적 여유는 없었지...

 

 

 

반구서원

 

 

 

반고서원 유허비(盤皐書院遺墟碑)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00-1 외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 선생은 고려 우왕 2년(1376)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원배명 외교정책에 반대하다가 이곳에서 1년가까이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동안 반구대에 올라 "중양절감회"라는 시를 짓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지역인들은 선생을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라 명명하기로 하였다.

숙종 38년(1712) 언양지역 유생들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세 분을 추앙하여 반고서원을 세우고 제서하였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서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지역 유림들이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실록대비(1890), 반고서원유허비실기(1901) 3기의 비석을 차례로 세웠으며, 1965년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문화재청 자료)

 

 

반구서원을 지나 펜션 한켠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걷는 거리는 아마 약 500m쯤 될 것이다.  

해는 기울고 인적은 드문데, 갈길 먼 나그네의 빠른 발걸음...

 

대곡리 공룡발자국화석 가는 길이 나타나고...

이곳을 지나서도 한참을 더 걸어가서야 반구대 암각화를 만날 수 있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畵)

 

국보  제285호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991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1965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현재 물 속에 잠겨있는 상태로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45점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조각기로 쪼아 윤곽선을 만들거나 전체를 떼어낸 기법,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의 사용으로 보아 신석기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전체 화면에는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동물 그리고 탈을 쓴 무당, 사냥꾼, 배를 타고 있는 어부, 목책, 그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들 모습은 떼어내기 수법으로 형체를 표현한 음영화(陰影畵)와 쪼아파기 수법의 선으로 나타낸 선각화(線刻畵)로 나타내었으며 시베리아 암각화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수렵과 어로를 위주로 한 당시의 생활풍속을 알려주는 가장 귀중한 선사시대 문화유산으로 한 화면에 200여점에 달하는 다양한 종류의 물상들이 새겨져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예로서 고고학, 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망원경이 있건만 어째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해설사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해설사는 퇴근...  아쉬웠다.

망원렌즈가 없어서 그 또한 아쉬움...

보이는 게 시원찮으니 이런 걸 보자고 여기까지 왔냐며 잔소리를 늘어놓더라니...

돌아나오는 길에 이곳을 방문하는 어른과 아이를 동반한 다른 가족을 만났다.

대단한 사람들이라며 옆지기가 한마디 하더니 더 이상 내게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았다.

잘 됐다. 천전리 각석 보러 가는 일은 이제 쉬운 일이 되었으니~~~

 

2011.05.0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