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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2008.11.09 (일)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 2008.11.09  (일) 수락산 나들이 ]

 

 

단풍이 한창인 시기...

낮 잠시 수락산으로 나들이하다.

길가다 만난 은행나무에 물든 그 절정의 빛은 형언키 어려운 아름다움...

 

낙엽이 쌓인 풍경...

 

 

 

 

[ 흥국사 ]

 

   흥국사가 처음 세워진 때는 599년(신라 진평왕 21)으로 창건주는 세속오계로 널리 알려진 원광법사. 창건 당시의 이름은 수락사(水落寺)였는데, 1568년(조선 선조 1) 선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아버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원당으로 삼으면서부터 흥덕사(興德寺)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은 중종의 8번째 아들로 소실 태생. 선조가 왕위에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는 얘기. 그러나 명종대에 이르러 정실 태생의 왕손이 끊어짐으로써 선조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

   왕위에 오른 선조는 아버지의 무덤이 능이 아니라 묘로 불리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서 궁리 끝에 당시 궁중에서 쓰던 땔감을 흥덕사 근처에서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는 궁중 관리에게 시키기를, 덕릉(德陵)에서 왔다고 하면 후한 값을 쳐 주되 덕흥군 묘에서 왔다고 하면 사지 말라고 했단다. 이에 사람들은 덕릉으로 부르게 됐고, 절 또한 덕절로 불리게 됐다는...  626년(인조 4)에 덕흥사는 다시 이름이 흥국사(興國寺)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흥국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영산전, 왼쪽에 시왕전, 맞은편에 대방을 두어 네모꼴의 가운데 마당을 이루고 있다. 대웅전 뒤편의 산기슭에는 독성전과 만월보전, 단하각이... 대웅보전(도문화재자료 제56호)은 1793년(정조 17)에 중수됐다가 1818년(순조 18)에 불에 타 3년 후 중건된 건물로,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는 건물이라고 한다.

 

 영산전

 

맨왼쪽이 대웅보전

 

 

왕실과 인연이 깊은 이유로 대웅전 지붕에 잡상이 얹혀 있다.

 

 

 

 

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