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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북 단양] 새한서점을 보며 빛바랜 기억을 더듬다.

충북 단양 새한서점 (2023.06.08.목)

 

 

새한서점을 방문하니 언뜻 헌책방에 대한 빛바랜 기억이 떠오릅니다.

벌써 수십 년 전 이야기네요.

당시만 해도 교과서, 참고서 등등을 헌책방에서 많이 구입했었지요.

 

3살 어린 동생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일입니다.

동생에게 한글을 가르치겠다고 헌책방을 방문했었답니다.

찾던 1학년 교과서가 없어서 돌아서서 가는데

중학생 정도 되는 언니의 제안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기 집에 동생이 쓰던 헌교과서가 있다고요.

그거 주겠다고요.

얼마나 고맙고 신나던지요.

구세주를 만난 듯 기뻤지요.

 

우리 세 자매는 친절한(?) 그 언니를 따라갔습니다.

골목길 파란대문집 앞에 서더니 "이 집이 우리집이야." 합니다.

그러고는 옆 골목길로 우리를 데려가더군요.

"1학년 헌책 가져올 테니 여기 꼼짝 말고 서 있어.

그리고 선물로 진주목걸이를 하나씩 줄게.

너는 분홍색, 너는 파란색, 너는 노란색...

다른 데 가면 내가 못 찾아오니까 여기 그대로 있어."

하고는 우리를 벽에 세우고 우리 돈을 가지고 사라졌답니다.

당시만 해도 색깔별 진주목걸이는 부잣집 아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귀한 액세서리였으니 내심 얼마나 좋았는지

우리 세 자매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찼답니다.

웃음띤 얼굴로 서로 바라보았었지요.

헌책과 진주목걸이까지 받을 생각에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고,

다리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헌책 가지러 간 언니는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급기야 지친 세째 여동생(당시 5살)이 집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야, 끝까지 기다려야 헌책도 받고 진주목걸이도 받지."

하며 동생을 달랬지요.

진주목걸이 때문에 잠시 기다리는 시간을 벌었지만

시간이 더 지나자 둘째 여동생(당시 7살)도 지쳐서 집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떼쓰는 동생들을 달래도 보았지만

이미 지친 정도가 넘치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어둑해질 무렵, 급기야 두 여동생은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골목길 벽에 붙어 서 있었습니다.

순진해서 고집스럽게 기다렸던 지난 날의 그 기억~~~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속상합니다.

 

동생들이 돌아간 얼마 후에 엄마가 데리러 왔습니다.

"**아, 집으로 가자. 그 사람은 사기꾼이다."

당시 시골에서 막 도시로 간 나는 도시 물정을 전혀 몰랐었지요.

그렇게 사람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아니야. 골목 초입 파란대문집이 자기집이라고 알려줬는데 그럴 리가 없어.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을 해!"

고집을 부리는 나에게 엄마는 파란대문집을 찾아가자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 집에는 그 친절한 언니가 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세상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돈 뺏긴 것도 억울하고 기다린 것도 억울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을 속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였죠.

살아오면서 최초로 사기를 당해봤네요. ㅎㅎ...

 

헌책 이야기만 나오면 그 옛날 기억이 떠오른답니다. 

친절한 그 언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아직도 친절한(?) 그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마음 고쳐먹고 바르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