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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부산] 친구들과의 2박3일 부산모임 3일차 2 - 아미비석문화마을, 천마산하늘전망대, 임시수도기념관(대통령관저), 황산밀면

친구들과의 2박3일 부산모임 3일차 2

- 아침, 영화의거리, 점심(송도회관 회), 송도해상케이블카, 아미비석문화마을,

천마산하늘전망대, 임시수도기념관(대통령관저), 저녁(황산밀면), 그리고 이별


송도 해상케이블카


해운대 영화의 거리


천마산 하늘전망대


부산 임시수도기념관(부산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2020.1.11.토)



송도 해상케이블카를 뒤로 하고

감천문화마을 옆을 거치고 아미동 비석마을을 거쳐

천마산길 하늘전망대까지 찍고

임시수도기념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으로 간다.

역시나 택시 두 대 잡아서

감천문화마을 옆으로 아미동 묘지 위의 집 앞으로

들러서 가자고 이야기하고서...


감천문화마을 아래쪽 어귀를 지나며...


감천문화마을 위쪽 입구도 지나간다.

감천문화마을은 대부분 다 가 봤기에 그냥 패스~


감천고개 감천문화마을과 아미동비석문화마을 경계를 지나

아미동길로 접어들어 산상교회 앞에 택시를 세워달랬다.





아미비석문화마을

아미비석문화마을 안내도

전에 돌아본 곳~

이번에는 친구들과 묘지 위의 집만...

택시 불러 간 터라 여기저기 돌아보기도 어려워서...




묘지 위의 집

이 동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공동묘지였던 곳~

광복 후 귀환한 동포들과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모여

주거지가 형성된 곳...

지금은 비석들과 묘지 일부만 남아있다.

지붕 위에 전에 없던 가리개가 씌워졌네...


예전에는 이곳에 해설사님이 없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 해설사님이 계셨다.

그분께 사진 한 장 부탁~

이어서 이웃한 천마산하늘전망대로 간다.



천마산 하늘전망대


임시수도정부청사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된 임시수도기념관 등

근대 역사의 흔적들을 여럿 간직하고 있는 부산 서구...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현 동아대박물관(석당박물관)으로

원래 경남도청 건물이었고,

한국전쟁 당시에 임시정부청사로 사용.

임시수도기념관은 경남도지사 관사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다.



천마산 하늘전망대 옥상, 2층은 오르다가 카페


소리 공간


잠시 소리 체험도 하고...



화 '시장'의 한 장면~


바다를 바라보면서

훗날 우리들의 이야기도 만들어낸다.


천마산 하늘전망대에서...

부산타워, 부산항대교, 영도대교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천마산 하늘전망대에서...


천마산 하늘전망대에서 영도와 남항대교까지 바라보고

이어서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가게 된다.





임시수도 기념거리

임시수도기념관 앞 임시수도 기념 거리


임시수도 기념거리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이 거리를 걸어도 좋았을 텐데...




임시수도기념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1984년 6월 25일 개관.

개관 당시 중심 건물이었던 대통령 관저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1926년 8월 10일 도지사 관사로 지어진 벽돌조의 2층 가옥으로,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부산이 대한민국의 임시수도로 기능하던 기간(1950~53년)에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거처하셨던 곳.

한국 전쟁 당시 대통령의 집무실과 응접실 등을 당시 분위기 그대로 재현.

대통령 내외와 수행비서들의 생활공간~

내실과 거실, 손님방, 식당과 부엌 등...

2012년 9월 19일에는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자리잡고 있던 옛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를

전면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전시관으로 개관.

지하1층 지상1층의 벽돌조 가옥인 전시관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피란민들의 생활상,

임시수도 시기 부산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실.

(출처: 임시수도기념관 홈페이지 자료)


임시수도기념관 입구

안내실


임시수도기념관 안내도


 < 임시수도기념관  연혁>

   * 1926.8.10                      물 준공 (2층 목조 기와)

   * 1926~1949                    경남도지사 관사

   * 1950.8.18~1953.8.15     임시수도 시절 대통령 관저

   * 1953~1983                    경남도지사 관사

   * 1984.6.25.                     임시수도기념관 개관

   * 2000.4.10~2001.11.5   대통령 관저 복원 공사
   * 2002.5.6                      부산시 기념물 제53호로 지정
   * 2002.5.21~11.7            대통령 관저 꾸미기 공사
   * 2012.9.19                     전시관 개관
   * 2018. 11.6.                   등록문화재(사적 제546호)


임시수도기념관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굵직굵직한 수목의 모습이 오래된 역사를 느끼게 한다.


사적 제546호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사빈당)

이곳이 입구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돌아볼 방향이 잘 안내되어 있다.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내부 구조


응접실



이승만의 2대 대통령 취임 후 각부 장관 임명장 수여 모습(1952.9.15)


서재


서울 이화장의 이승만 대통령 서재 모습



서재 모습


내실


거실(모형전시실)


거실(모형전시실) - 피난 시절의 유세 모습


거실(모형전시실) - 피난 시절의 장터 모습


거실(모형전시실) - 피난 시절의 천막학교 모습


거실(모형전시실) - 피난 시절의 빨래터 모습


화장실


식당


피난 시절의 부산 장터 국수집(위 사진)


부엌


욕실


조리사실(생각의 방)


생각의 방

이승만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할 당시

이 방은 조리사가 거주하던 이었단다.

비치된 책은 한국전쟁과 이승만 관련 도서들...


경비실(증언의 방)



경비실(증언의 방)

한국전쟁 때 19세의 나이로 자원입대한 이정숙 할머니의 이야기...

1950년 9월 백골부대 G-2특공대에 지원입대,

1950년 4월까지 수색, 정찰 등 임무 수행,

이후 부산으로 내려가 살면서

줄곧 안보강연,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전후세대들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통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활동을 하고 있단다.



2층으로~

집무실(전시실)


집무실 - 임시수도기의 정치사 이야기 외~


임시수도기의 정치사

1950.6.25. 한국전쟁 발발

1950.7.2. 이승만 대통령 부산 도착

1950.7.17. 정부, 부산으로 이전

1950.7.27. 부산극장에서 국회 개최

1950.8.18. 정부기구 부산 이전 완료

1950.9.28. 국군의 서울 수복

1950.10.25. 중공군 참전

1951.1.3. 정부, 부산을 임시수도로 결정

1951.1.4. 정부, 부산으로 재이전

1951.7.10. 휴전회담 시작

1952.1.18. 평화선 선포

1952.5.26. 부산 정치파동

1952.7.4. 대통령 직선제 발췌개헌안 통과

1952. 8.5. 이승만, 대통령 당선



1953.4.11. 대통령, 휴전반대 성명

1953.6.8. 포로교환 협정 조인

1953.6.18. 반공포로(25,000명) 석방

1953.7.27. 휴전협정 조인

1953.8.8.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

1953.8.15. 정부, 서울 환도




임시수도기 부산의 주요 사건 일지

1950.8.28. 제1차 통화 조치.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변경

1951.2.19. 전시연합대학 발족

1951.2.26. 전시 하 교육특별조치 요강 발표



1951.7.11. 부산 송도 제5편리호 침몰.

                   사망 55명

1952.3.12. 조선방직주식회사 파업

1952.5.7.  거제도 포로수용포 폭동.

                  수용소장 돗드 준장 납치

1952.7.17. 부산 부두노조 임금인상 총파업 

1953.1.30. 국제시장 대화재. 판자집

                   1,984호 소실.  2,366세대

                   (13,235명) 이재민 발생

1953.2.15. 제2차 통화 조치

1953.3.18.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 공포

1953.5.10. 근로기준법 공포


임시수도기의 정치사 이야기, 부산의 주요사건 일지


마루방(회상의 방)

임시수도기념관 영상물 상영관으로 쓰이고 있다.





임시수도 부산, 1000일의 역사 상영

비참했던 한국전쟁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바깥으로...


임시수도기념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바깥에 '한국전쟁과 부산' 전시 중이어서 잠시 구경하게 된다.


한국전쟁과 부산 전시


북한 침략 중 마지막 교두보였던 부산~

부산은 한국전쟁 중에 임시수도가 되었고

몰려드는 피난민들로 인해 단번에 대도시가 되었다.

이 전시는 한국전쟁기 부산의 각 지역들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전쟁기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 부민동

일제강점기에 부민동에는 경남도청, 도지사관사, 법원, 부립병원 등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정부청사, 대통령과 부통령 관저, 국회 등을 부민동으로 이전하였고,

부민동이 대한민국 정치일번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부산 정치파동

1952.5.25.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헌에

반대하던 국회의원 연행, 억류한 사건


뒤 전시관으로 가는 길~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 중앙동

일제강점기에 중앙동 일대는 대창정(大倉町)이라고 불렸는데,

부두의 물류를 보관하기 위한 큰 창고들이 많았던 데서 비롯되었단다.

해방 이후 부산역을 가진 중앙부라는 뜻으로

중앙동이 되었다고...

한국전쟁 이전에 부두, 세관, 부산역 등의 주요 기간 시설과 건물,

미나카이 백화점 등 큰 규모의 상업 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면서 이런 건물들이 유용하게 활용되었단다.


국제시장 신창동

개항 이후 초량왜관은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되었는데,

서관(용두산 서편 왜관)은 서정(西町)으로 불리다가

해방 이후 서정은 신창동으로 바뀌었단다.

일제강점기에는 상공회의소, 동본원사 부산별원 등이 있었고,

뒷길에는 상가가 빼곡했다고 한다.

해방 후 일본에서 귀환한 동포가 생계수단으로 가지고 온 생필품을 팔거나

부산지역 주민들이 일본인이 남겨두고 간 가재도구들을 거래하며

형성된 시장이 국제시장의 시원이라 한다.

자유시장으로 불렸다가 한국전쟁 직전에 다시 국제시장으로 불렸단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부산에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국제시장에서는 다양한 물건이 거래되었다.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광복동

조선시대 초량왜관은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관과 서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단다.

일제강점기에 광복동 일대에는 많은 일본인이 거주했으며,

이들을 위한 상업·문화 시설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부민관(시민관), 미진호텔, 기타 상점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이 지역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자리하기도 했다는...

1950년대 광복동은 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Pusan P.X.매점으로 인해

'PX거리'라는 별칭을 가졌단다.

광복장호텔(구 로얄관광호텔 위치), 예술인들이 많이 이용한 밀다원 다방,

문총 사무실 등이 광복동에 있었단다.

용두산 공원 서쪽 산록의 동주중(현 동주여고)에는

한국전쟁 초기에 서울대 문리대와 사범대가 피란학교로 썼다고...


한국 산업의 초석이 되다, 범일동

일제강점기에 범천 1리와 2리를 합병해 범일동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1970년대까지

많은 제조업체들이 설립·운영되었다. 

조선방직(1917-1969), 동명목재, 대선발효공업사(현 대선주조),

삼화고무, 국제화학(현 LS네트웍스) 등이 있었다.

이웃한 부전동과 전포동에는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와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현 CJ제일제당)가 들어섰다.


불행한 역사였던 한국전쟁이

역설적이게도 부산이 경제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네.

부산은 전쟁으로부터도 안전한 지역이었고,

부산항을 통해 원조품, 생필품, 원자재 수입이 가능했으니

전쟁 시기에도 안정적으로 물품을 생산할 수 있었단다.

전쟁 시기에 조선방직이 국내 총생산량의 57%를 점했다니

당시의 부산 경제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다.


소 검역소 마을에서 피란민 마을로, 우암동

우암동과 감만동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적기(赤崎, 적기반도)로 불렸단다.

1909년 일본으로 수출하는 소에 대한 검역이 실시되면서

우암동에 전국 최대 규모의 검역소(부산이출우검역소)가 설치되었다.

해방이 되자 이곳에 귀환동포들이 살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때 우암동이 피란민수용소가 되며 더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단다.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뒤편)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뒤편



그동안 자세히 몰랐던 '한국전쟁과 부산' 이야기를 통해 

아이러니하기도 한 부산의 대도시화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제 뒤편 전시관으로 향한다.

이곳은 옛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였다고 한다. 

임시수도기념관(전시관)

옛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

2012년 9월 19일, 전면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전시관으로 개관.

지하1층 지상1층의 벽돌조 가옥.

한국전쟁의 발발과 피란민들의 생활상,

임시수도 시기 부산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실.


한국전쟁 시기, 이고 지고 떠나는 피난 행렬~


1950년 7월 1일 연합군 지상부대 부산 상륙,

부산에 해군작전본부 설치.

 

피난 시절의 자촌


피난살이와 재활용품

집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무엇이든 살아그는데 필요한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삐삐선을 이용한 장바구니가 보인다.


피란학교, 꿀꿀이죽과  밀면

밀면은 삼복 중 별미음식으로 <동국세시기>에 기록되고 있다고 하며,

부산 밀면은 한국전쟁 이후 냉면을 대체하는 음식이 되었는데,

당시 구하기 힘든 메밀 대신 미군 구호품인 밀가루로

만들어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꿀꿀이죽은 유엔탕이라고도 불렸다는데,

값이 싸서 피란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 전쟁 당시  '도떼기시장’으로 불리던 국제시장에는

1950년 후반에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한데 모아

희멀건 죽(꿀꿀이죽)을 끓여 파는 죽집들이 생겨났단다.


국제시장 이야기


각종 벽보들~


문화사랑방으로서의 다방, 전시 미술의 중심지가 된 부산 이야기



임시수도기의 이야기들~



임시수도기의 정치 이야기



임시수도기의 행정 이야기

예산안, 추가경정예산안 서류~



임시수도기의 원조 경제 이야기


1950년 부산시 소재 주요 기관들~


전쟁으로 인한 피해 모습


미군에게 초코렛을 받아 먹던 시절~

우리에게 이런 아픈 시절이 있었구나!

참 슬픈...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은 참 많은 발전을 한 나라~

세계 속에 당당히 걸음을 같이 하는 나라가 되었네...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살펴보고

다시는 그런 아픔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시수도기념관을 돌아나간다.




황산밀면

친구들 모임 마지막 식사는 부산 역 인근에서 밀면으로~


이른 저녁~ 온면, 비빔면 등으로 각자 취향에 맞게...

부산역으로 걸어가면서

인근 삼진어묵에서 선물용 어묵도 한 봉지씩 사고...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이별~

부산항대교가 바라보이는 이별의 부산역에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저녁 6:00 출발 서울행 KTX를 탄 친구들~


KTX를 탄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18:10 SRT를 탈 친구들과 부산에 남을 친구~


10분 차이로 KTX는 떠나가고~

내가 탈 수서행 SRT가 기다리는 부산역...

그렇게 아쉬운 이별을 한다.

또다른 만남을 위한~~~

(2020.1.1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