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대전광역시 동구] 우암사적공원(남간정사, 유물관, 남간사)


[대전광역시 동구] 우암사적공원(남간정사, 유물관, 남간사)


대전을 밟은 게 몇 번인데,

아직도 우암사적공원에 못 갔다니~~~

올 봄에는 꼭 들러보리라 마음 먹었네...


우암사적공원의 남간정사

(2019.4.7.일)


지난 4월 초에는 우암사적공원 앞길에도 벚꽃이 절정이었다.


우암사적공원 주 출입구



우암사적공원 설명


암사적공원은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선생이 학문을 닦던 곳으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1만 6천여 평에

장판각, 전시관, 서원 등 16동의 건물을 복원해

사적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곳은 선생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

송시열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보전되어 있다.

(출처: 대전 동구 관광)


우암사적공원 안내도


주출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으로 남간정사와 기국정이 있는 공간이 나온다.


기국정



기국정

송시열이 건물 주변에 구기자와 국화를 심고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학문을 논하며 지냈는데,

선비들이 구기자와 국화가 무성한 모습을 보고

기국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래 소제동 소제방죽 옆에 있었고 초가지붕이었으나

우암의 큰손자가 기와지붕으로 수리.

소제가 메워지고 건물이 허물어지게 되어

1927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남간정사 연못

이 공간은 야외 웨딩촬영지로도 인기가 있는 곳인가 보다.


남간정사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해설사님의 해설을 듣고 있다.

우리도 잠시 그곳에 끼어서 듣고...


남간정사, 고목 두 그루, 기국정


고목 느티나무 두 그루...

이 두 그루의 고목이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남간정사~

우암 송시열이 학문을 가르치던 곳...


남간정사

대청 아래로 계곡물이 흘러내려오도록 한 구조를 보인다.

'남간(南澗)'은 양지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을 의미한단다.


'南澗精舍' 현판 글씨는 송시열의 제자인 곡운 김수증이 쓴 것으로

뒷면에 1687년(숙종13) 5월에 썼다는 음각 글씨가 있다.


서까래 기둥이 둥글고 네모나고~

이것도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사상에 의한 것...



명자꽃이 한창, 뒤 언덕에는 사당이...


사당(남간사)

1677년에 유생들이 주자, 송시열, 권상하 등을

배향하기 위해 지었단다.

남간사 새로운 사당이 생겨서

이 사당은 그냥 보존 중...


배롱나무

남간정사는 뒤편 계곡 샘으로부터 물이 흘러내려와

건물 대청 아래를 거쳐 연못으로 흘러들어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남간정사 뒤편의 배롱나무는 우암이 강학하던 중에 손수 심었다고 한다.

본 나무는 고사되고 자손나무가 자라나온 듯...


남간정사


기국정

기국정과 남간정사 사이의 두 고목 느티나무가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듯 버티고 있다.


기국정 남간정사


남간정사 구역


남간정사 일각문을 나가서 만나게 되는 정자


유물관과 새 사당(남간사) 가는 길~



유물관




송시열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서인의 영수로 불린다.

1607년 옥천(외가) 출생.

8세 때부터 송준길의 집에서 함께 공부하게 되어,

나중에 양송(兩宋)으로 불리게 된다.

27세 때 생원시에서 장원.

1635년에는 봉림대군의 사부가 됨.

병자호란 때 왕의 치욕과 왕자들의 인질이 벌어지자 낙향.

1649년 효종이 즉위하여 송시열 등용.

효종이 급서한 뒤, 조대비의 복제 문제로 예송.

효종비의 상 문제인 제2차 예송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파직, 삭출, 유배.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자,

유배에서 풀려나 중앙 정계에 복귀.

1689년 1월 숙의 장씨가 아들(경종)을 낳자

원자의 호칭을 부여하는 문제로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재집권했는데,

이 때 세자 책봉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러다가 그 해 6월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사망.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서인이 정권을 잡자

송시열의 죽음이 무죄로 인정되어 관작이 회복되고 제사가 내려졌다.

이후 송시열을 제향하는 서원이 여러 곳에 세워졌고,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도 내려졌다.


송시열 영정

현재 전하는 송시열 영정 중 가장 수작으로 꼽히는 영정.

상단 우측에는 송시열이 스스로 경계한 글이 쓰여 있고,

그 옆 상단에는 정조의 어제 화상찬이 쓰여 있다.

송시열이 쓴 화상찬 끝에는

신묘년 화양서옥에서 자경한다는 글이 있어

송시열이 45세 때 그려진 영정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인상이 노년기로 보이고

김창업의 초본과 비슷하므로

더 후대에 그려진 것으로 보기도 한단다.



송시열 인


송시열 영정, 송시열의 글씨 부끄러울 '치', '해동건곤 존주대의'


효종의 생애를 저술한 영릉지문...

효종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힘을 잃은 북벌론~



송시열의 '영릉지문' 이야기



송시열의 글씨, 부끄러울 치(恥)

오랑캐(청나라)에게 수모를 당한 참담한 심정을 나타낸 것...


송시열의 글씨


생원시 장원 글 뒷면 


생원시 장원 글 앞면 

1633년(인조11) 송시열의 생원시 답안으로

일반적인 시권의 방식에 맞지 않아 모든 사관들이 탈락시키려고 했으나

최명길이 큰 선비가 될 것을 예견하여 최고로 평가하여 장원이 되었다고 한다.


괴산 화양동 계곡의 화양서원 복원 조감도


우암 송시열을 배향하는 서원, 화양서원


오른쪽은 초구(담비털옷), 가운데에 남간정사 탁본, 왼쪽은 우암의 문집




갑인에송 후 함경도 덕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제자 김만증에게 보낸 편지



남간정사 현판 탁본



여러 자손들에게 내리는 글

정읍에서 사약 받기 5일 전인 1689년 6월 3일,

제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가던 중에

유언과 같은 글을 남겼다.

"~너희들이 모름지기 가까이로는

집안 조상들의 덕행을 지키고

멀리로는 주자의 문하를 종주로 삼는다면,

나는 저승에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1717년의 철활자로 된 문집, 우암집(167권)

이희조, 민진후 등의 건의에 따라

왕명에 의해 교서관에서 철활자로 간행.

가장 먼저 나온 우암의 문집은 권상하가 편찬 발간한 황강본이란다.


1787년의 목판본 송자대전(총 215권 102책)

1787년, 빠진 글들을 수집 보완하여

평양감사 이명식이 주관하여 평양감영에서 목판본을 출간.

 성현을 부르는 관례에 따라 '송자'로 하여 '송자대전'으로 명명했단다.



송자대전


관리사무소 장판각

유물관과 마주보는 언덕쪽에 장판각이 있다.


장판각



송자대전판



장판각의 송자대

우암 송시열의 글과 일대기 등을 모아 놓은 송자대전의 목판. 

1819년 괴산 화양동에 지어졌던 장판각이

1907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없어지고,

1929년에 후손과 유림들이 남간정사에서 다시 판각한 것...


장판각 앞쪽에서 바라본 주차장과 우암사적공원 담장


유물관과 장판각 사이로 난 오름길을 따라 남간사로 향한다.


오름길에서 뒤돌아보면

홍살문 아래 오른쪽으로 유물관이 보이고,

왼쪽 언덕 위에 장판각이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남간정사가 있는 곳...


남간사 외삼문 명정문



이직당(以直堂)

명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마음을 곧게 쓰라는 뜻의 강당인

이직당(以直堂)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나 당당한 모습인데,

유용하게 잘 쓰였으면...


왼쪽에는 공부방인 명숙각(明淑閣)이...



명숙각


오른쪽에도 공부방인 인함각(忍含閣)이...



 인함각


제사를 준비하는 곳인 전사청도 보인다.


이직당을 지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남간사)

이곳은 문이 닫혀 있다.


사당 아래 왼쪽에 위치한 공부방인 견뢰재(堅牢齋)



견뢰재에서 바라본 남간사


남간사 아래 오른쪽에 위치한 공부방인 심결재(審決齋)



심결재에서 바라본 내삼문과 남간사


남간사 내삼문 앞에서 바라본 이직당


좋은 봄날에 많은 분들이 우암사적공원을 찾았네...


사당을 나와 공원을 더 걸어본다.


덕포루와 연못


봄날의 우암사적공원


남간사


우암사적공원 뒤편의 문으로 나가니

옥정사 약수터가 보이고~


가양비래공원 종합안내도를 만난다.

등산로가 잘 표시된 걸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산이요 공원인가보다.

경부고속도로와 옛 도로의 모습도 보인다.

잠시 옥정사 주변과 공원길을 걷다가

다시 우암사적공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시 우암사적공원으로 들어와서 경내를 거닐어본다.


암자료실인데,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듯~~~


덕포루


연지


우암자료실 덕포루, 남간사 연지


아름다운 봄날에 우암사적공원에서...

(2019.4.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