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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강원

[고성] 북간도 용정을 닮은 곳, 영화 '동주' 촬영지, 고성 왕곡마을

[고성] 북간도 용정을 닮은 곳, 영화 '동주' 촬영지, 고성 왕곡마을


< 속초 고성 여행 >

* 제 1일 : 올림픽공원 출발~속초~점심(봉포 머구리)

~설악산 비룡폭포~토왕성폭포 전망대~저녁(이모네 식당)

~속초관광수산시장(중앙시장)~숙소(한전연수원)

* 제 2일 : 고성 청간정~천학정~왕곡마을~거진 해맞이봉

~화진포(김일성, 이기붕, 이승만 별장)~송지호 철새관망타워(커피)

~양양 쏠비치 산책~속초 영랑호와 범바위~저녁(속초 대관령 한우)




2016.04.03(일)


능파대를 건너뛰고 송지호쪽으로 올라가는 길~

송지호 철새관망타워 들르려던 것이 그냥 지나쳐버려서

왕곡마을에 먼저 들르기로 하였다.

왕곡마을은 영화 '동주'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영화 <동주>의 주 배경 무대는 북간도 지역이다.

왕곡마을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방식 한옥 마을로 보존이 되어 있어

<동주>의 촬영지로 정해졌다고 한다.



지난 봄, 영화 '동주'를 보았었다.

짧지만 지극히 문학을 사랑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

그리고 애국적이었던 삶~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가라앉았으며,

숨쉬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졌던 시간~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되는 <서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윤동주,

그리고 그의 고종사촌 형이자 독립운동가인 송몽규의 삶...

윤동주는 28세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후대에 길이 남겨질 시들을 남기고 떠났다.

3개월 형인 송몽규 역시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문에 ‘숟가락’이 당선되었으니

오히려 윤동주보다 먼저 문학적인 소질을 인정받은 셈...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우울은 둘의 운명을 나락으로 빠뜨렸다.

연희전문에 나란히 입학하는 등

두뇌가 명석했던 두 청년은 항일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0일 간격으로 옥사했다.

조국의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윤동주 1945년 2월 16일, 송몽규 3월 7일)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 두 청년의 비참한 최후~

투옥 후 매일 밤 이름모를 주사를 맞았다는 그들~

일제는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ㅜ.ㅜ




이번에 들른 왕곡마을에서

영화 <동주>의 20% 정도를 촬영했다고 한다.

북방식 한옥 마을로 보존이 된 때문에

이곳에서 북간도 용정마을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방문은 다섯 부부 10명이 움직이는 일정이라

세세히 돌아보지는 못 하고

비까지 내려서 그냥 휭하니 돌아와야 했다.



아래 파란색 부분들은 왕곡마을 홈페이지에서 찾은 왕곡마을 자료이다.


<왕곡마을의 지형,지리>


송지호에서 왕곡마을을 바라보면

유선형의 배가 동해바다와 송지호를 거쳐

마을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

이러한 방주형의 길지는 물에 떠 있는 배형국이어서

구멍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기 때문에

한때 마을에는 우물이 없었다고 전한다.

우물이 없었던 시기에는 샘물을 이용하였고,

근대에 와서는 우물을 사용하였다.


위와 같은 지형적인 특성과 풍수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지난 수백년간 전란과 화마의 피해가 없었던 길지 중의 길지로서

한국전쟁과 근래 고성지역에서 발생했던 대형 산불 때에도

왕곡마을은 전혀 화를 입지 않았다.




(안내도 출처 : 왕곡마을 홈페이지)


<왕곡마을의 역사 문화>

왕곡마을은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 분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에 낙향 은거한데서 연유하며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한 이후

함씨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생활해 왔다.

특히,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 채 잘 보존되어 왔기에

전통민속마을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0년 1월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고려말, 조선초 이래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600년 세월을 정주해온 전통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부터 이 지역은 면소재지였으며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884년에는 왕곡마을이

금성(錦城), 왕곡(旺谷), 적동(笛洞) 세 마을로 분리되었다.

금성에는 양근 함씨가, 왕곡에는 강릉 최씨가, 적동에는 용궁 김씨가 많이 살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 세 마을을 다시 합쳐 오봉(五峰)이라 불렀고

한국전쟁이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봉1리(금성,왕곡)와 오봉2리(적동)로 합병, 분할되었다.

즉 현재의 왕곡마을은 금성과 왕곡 두 마을이 합쳐진 곳으로 오봉1리에 해당하며

적동마을은 왕곡마을로부터 700~800m 서쪽에 위치한 오봉2리이다.



우리가 들어온 길은 저잣거리가 있는 쪽이었는데,

먼저 작은 개울이 흐르는 좁은 길을 따라 차로 이동하며

왕곡마을보존회, 성천집 등을 지나 큰상나말집까지 돌아보았다.

길이 좁아서 차를 돌리기가 어려운데다가

비가 오니 차에서 내리자고 하기도 어려워서

차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마을 입구의 효자비각도 지나가며 보았다.



마을의 가운데쯤에 위치한 마을회관.

우리가 차를 댔던 장소.

차를 대기도 좋은 장소이고 해우소도 이용할겸~

비도 조금 잦아들어서 잠시 내리자고 하였다.





왕곡마을 안내도

왕곡마을에는 권역별로 안내표시가 있다.




<왕곡마을의 가옥 배치 및 구조>

마을 중앙의 개울을 따라 이어져 있는 마을 안길을 중심으로

가옥들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으며

가옥과 가옥 사이에 비교적 넓은 텃밭이 있어서 따로 담이 없고

텃밭을 경계로 가옥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왕곡마을의 가옥구조는

안방, 도장방, 사랑방, 마루, 부엌이 한 건물내에 수용되어 있으며

부엌에 가축우리가 붙어 있는 겹집구조이다.

마을 안길과 바로 연결되는 앞마당은

가족의 공동작업 공간 역할을 하면서 타인에게 개방적이었던 반면에

비교적 높은 담으로 둘러쌓인 뒷마당은 여인들의 공간으로 비개방적이다.

뒷마당은 보이지 않고 지붕만 보여 여인들의 활동공간을 배려한 구조이다.


ㄱ자형 북방식 집 구조와 양통집의 형태를 보이는 왕곡마을의 집들~

양통집은 겹집 형태를 말한다.




<외양간과 부엌>
부엌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고
부엌 앞으로는 외양간을 붙여 온기를 유지했다.
부엌에서 통하는 뒷마당은 비교적 높은 담장으로 남의 시선을 차단했다.
완전 개방된 앞마당과 달리 담장으로 둘러친 뒷마당은
공간을 확보하여 북서풍을 막는데도 효과적이고
산죽(대나무)을 이용한 뒷담을 만든 가옥도 있다.




마을 가운데로 왕곡천이 흐르고 있다.



산수유가 피어 있었던 초봄...



비까지 내려 봄빛을 더 재촉한 듯~



<서까래>

모두 겹집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

실제로 사랑방의 경우 난방을 위한 별도의 아궁이를 만들었고

불씨의 보호만을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만들었을 정도로 겨울의 바람이 드셌다.

또 지붕에 쌓이는 적설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전면 보다 배면의 서까래 직경이 더 굵은 집들이 다수 있으며

지붕 내부는 환기를 통한 결로 방지책으로 회칠을 하지 않고

산자를 엮은 채로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게 구성하였다.



<'ㄱ' 자형 기와집>

대부분 가옥의 본채는 조선시대 함경도 지방(관북지방) 겹집구조이다.
부엌에 가축우리가 붙어 전체적으로 ㄱ자 형의 독특한 평면형식으로
안방과 도장방, 사랑방, 마루와 부엌을 한 건물 안에 나란히 배치하고
부엌에 외양간을 덧붙여 겨울이 춥고 긴 산간지방에서의 생활에 편리하도록 했다.

 

 

그네뛰기와 널뛰기 체험장



<대문 없는 마당>

왕곡마을의 가옥구조는 대문이 없는 개방적인 배치구조이다.
즉 입구쪽으로 대문과 담장이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람과 눈이 많은 이 지방의 기후 특성과 관계가 있다.
햇볕을 충분히 받고 적설로 인한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개방 형태의 마당 구조를 취했으며
가옥의 기단을 높게 만든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초가집>

본채의 지붕 형태는 기와가 20여 채, 초가가 30여 채가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가집이 밀집,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행랑채와 부속채의 지붕은 3동이 기와형식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초가 형식으로 41동이 보존되어 있다.



언덕 위로 한옥 교회(오봉교회)가 보이는 동네...



교회 종

 

비가 와서 제대로 돌아보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왕곡마을은

언제 찾아도 좋을만큼 마음 푸근한 마을이며

딴 곳의 민속마을들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를 보여

한 번쯤 돌아볼만한 마을이다.


2016.04.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