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서울 경모궁지 (서울 景慕宮址) = 함춘원지
창경궁 관람을 마치고 사도세자의 사당이 있었다는 경모궁 터를 보러 가는 길이다.
창경궁 월근문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서울대병원으로 향한다.
그 길은 어쩌면 정조가 지나갔을 길 쯤인지도 모르겠다.
사도세자의 사당이 있는 곳..
이곳 경모궁지는 원래 함춘원 자리였다.
함춘원은 창경궁에 딸린 정원으로 성종 때 정식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영조 때 사도세자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 지었고
정조 때는 이곳을 경모궁이라고 불렀단다.
서울대병원 본관 뒷편의 경모궁지...
서울 경모궁지
사적 제237호
함춘원은 조선시대의 정원으로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위치한 곳이다.
『동국여지비고』에는 창경궁의 동쪽, 경희궁 개양문의 남쪽 등에 있는
궁궐의 정원 이름이 함춘원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그 중 그 입지나 규모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창경궁 동쪽의 것이다.
함춘원은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을 짓고,
풍수지리설에 의해 이곳에 나무를 심고 담장을 둘러
그곳에 관계없는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던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성종 24년(1493)년에 정식으로 이름이 붙여져 창경궁에 딸린 정원이 되었다.
연산군 때에는 함춘원 밖의 백성들의 집을 없애고 확장하였으며,
군대를 배치하여 일반인의 통행을 금하고 대문을 만들었다.
그 후 중종은 백성들을 다시 돌아와 살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덕빈의 시신을 임시로 묻는 등 점차 관리가 소홀해졌으며,
인조 때에는 함춘원의 절반을 태복사에 나눠주었다.
이후 140여년간 말을 기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영조 40년(1764)에는 사도세자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지었고,
정조가 즉위하자 이곳을 경모궁으로 불렀으며,
정조 9년(1785)에는 이 일대를 정비하였다.
광무 3년(1899)에 경모궁에 있던 장조 즉 사도세자의 위패를 종묘로 옮기면서
경모궁은 그 기능을 잃게 되었으며,
경모궁도 경모전으로 이름을 고쳤다.
광무 4년(1900)에는 경모궁 터에 6성조
즉 태조·세조·성종·숙종·영조·순조의 초상을 모시던 영희전을 옮겨 세웠다.
그 뒤 일제가 나라를 강점한 후 경모궁 일대에 경성제국대학이 세워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으며,
한국전쟁으로 인해 옛 건물이 불타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함춘원은 조선 후기의 세련된 건물 중 하나이며,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함춘문 뿐이다.
※(함춘원지 → 서울 경모궁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문화재청 자료)
사당은 없어지고 함춘문만 남아있다.
뒷편으로 건물터가 보인다.
날은 어두워지고 혼자서 경모궁지 한 바퀴...
안내도가 있지만 어두워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늦어서 연락할 수도 없겠다 싶어서 사진만...
경모궁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던 정조의 발자취를 잠시나마 더듬어본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곳에 있던 사당을 찾았다고 하니
정조의 효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다시금 알게 된다.
다시 한 번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정조의 뼈 있는 말을 생각하면서...
2014.10.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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