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잠든 곳, 홍릉
2013.12.08(일)
평소 시간을 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길을 나서는 것 같다.
지난 달에는 명성황후 생가를 찾았으니
이번 달에는 능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전에도 가 본 적은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일전에 명성황후 생가를 둘러본 이유도 있고 해서...
지난 토요일로 날이 잡혔지만 날씨는 또 좋지 않았다.
주말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좀 속상한 마음~
그래서 자유로운 사람이 늘 부럽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 (南楊州 洪陵과 裕陵)
사적 제207호
홍릉은 조선 26대 고종과 그의 부인인 명성황후의 무덤이다. 고종은 재위기간 중에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에서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을 겪었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비운의 왕비이다.
명성황후의 무덤은 처음에 청량리에 있었으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 하여 고종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광무 원년(1897) 대한제국 선포로 홍릉은 지금까지의 무덤 제도와 다르게 명나라 태조 효릉의 무덤 제도를 본뜨게 되었다.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면석에 꽃무늬를 새겼으며, 난간 밖으로 둘레돌과 양석을 세우지 않았다. 무덤 아래에는 정자각 대신에 앞면 5칸·옆면 4칸의 침방이 있는 집 즉, 침전을 세웠으며 문·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낙타 등의 수석을 놓았다. 문·무인석은 크고 전통적인 기법으로 조각되었다.
유릉은 순종과 동비 순명효왕후, 동계비 순정효황후의 무덤이다. 조선왕조 무덤 중 한 봉우리에 3개의 방을 만든 동봉삼실릉은 유릉 뿐이다. 12면의 면석에 꽃무늬를 새긴 병풍석과 12칸의 난간석을 세웠다. 무덤 아래에는 침전이 정자각을 대신하였으며 그 아래 문·무인석, 기린, 코끼리, 사자상 등을 배치하였다.
홍릉과 유릉은 철종 이전의 무덤과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을 황제로 칭하게 됨으로 제릉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 석물의 규모나 종류가 달라졌으며, 임금의 침실, 제사지내는 방의 위치가 달라졌다. 2개의 무덤을 하나로 묶기 위해 외곽으로 담장을 설치하였으며, 양릉 중간에 돌로 만든 연못을 두었다.
(출처 : 문화재청)
일반 왕릉과는 조금 다른 형식을 보이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역이다.
능침.
봉분에는 병풍석을 두르고 바깥으로 곡장을 둘렀으며 혼유석, 장명등, 망주석을 두었다.
능침 앞으로는 제사지내는 공간인 침전을 두었고, 그 앞으로 여러 석물을 두었다.
문석인, 무석인, 기린석, 코끼리석, 사자석, 해치석, 낙타석, 마석이 그들이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
홍유릉 입구 맞은편에는 홍유릉 역사문화관이 있다.
잠시 이곳을 둘러보고 나와 능을 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홍유릉 입구
문을 들어서서 안쪽으로 조성된 연지.
연지 왼쪽길로 걸어가면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을 만나게 된다.
연지
금천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재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홍살문이 보인다.
수라간
재실
홍릉
홍릉은 조선 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무덤이다.
명성황후의 무덤은 처음에 청량리에 있었으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 하여
고종 장사 후 고종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홍릉은 지금까지의 무덤 제도와 다르게 명 태조 효릉의 무덤 제도를 본떴으며
무덤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 대신에 침전을 세웠고
침전 앞으로 문·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해치·낙타·말석을 배치했다.
능침과 침전, 그 앞으로 석물들...
가운데 참도의 끝에 침전이 자리하고 있다.
고종 전까지의 왕릉에는 정자각이 자리하고 있으나
이곳은 황제의 능이라 하여 침전을 두었다.
고종 황제의 능은 명나라 태조 효릉의 무덤 제도를 본떴다고 한다.
정자각 대신에 침전을 세웠으며
문·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해치·낙타·말을 배치했다.
수석이 그리 정교하지는 않다.
침전
침전
침전 내부.
제사지내는 곳이다.
침전 앞 가장 가까운 곳에 문무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참도가 세 개인 것은 황제의 능에서만 볼 수 있는 형식이라고 한다.
가운데 높은 길이 돌아가신 왕의 길...
침전 앞에서 홍살문쪽으로 바라본 모습
홍릉비각
고종황제의 홍릉이며 명성황후가 왼쪽에 모셔져 있다는 뜻을 지닌 홍릉비
대한大韓
고종태황제홍릉高宗太皇帝洪陵
명성태황후부좌明成太皇后祔左
위와 같은 글이 세로로 세 줄 쓰여 있다.
침전 뒤의 능침
어정
어정과 능침
어정, 홍릉비, 침전 일부
예감
석물을 나타낸 표현력이 그리 풍부해 보이지는 않는다.
조각이 섬세하지 못한 편
어재실
어재실
수복방
조선 26대 왕으로 대한 제국의 초대 황제이기도 한 고종...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로 혼돈의 시기에 왕위에 올라 여러 굵직한 사건에 시달렸다.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 자리에 올랐으며
우리의 자주를 세계에 표방하려 했던 고종...
숨가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1905년에 을사늑약을 맺게 되었고
1906년 고종은 을사늑약이 불법 무효임을 선언하고,
우호통상조약을 맺었던 국가들에 친서를 보냈다.
1907년에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일제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국권 회복을 노렸으나
오히려 강제 양위의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일본은 한국식민지작업에 더 다가가는 제3차 한일협약을 강요했다.
그 후 1910년(순종 4년)에는 일제의 치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1919년 고종의 사망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 홍유릉 : 031-591-7043,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141-2 (홍유릉로 272)
* 명성황후 : http://blog.daum.net/leeke2000/16508238
* 러일전쟁과 을사늑약 : http://blog.daum.net/leeke2000/16507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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