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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청양] 대웅전이 둘 있는 칠갑산 장곡사 2

[충남 청양] 대웅전이 둘 있는 칠갑산 장곡사 2

 

 

하대웅전 주변만 보아도 아담한 사찰이 됨직한 풍경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대웅전 옆 계단길을 따라 상대웅전으로 오른다.

계단 옆으로 분홍색의 꽃들이 수줍은 얼굴로 반기네.

 

장곡사는 신라 후기 보조국사가 세웠다고 하며

조선 정조 1년(1777)에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장곡사 상대웅전으로 오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어 본다.

그런데 장곡사에는 왜 대웅전이 두 개일까?

그에 대한 설이 여러 가지로 분분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장곡사의 대웅전은 원래 상대웅전인데,

상대웅전에 모셔놓은 철조약사여래좌상이 영험하다는 소문에

병을 고치려는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왔고,

상대웅전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어

아래에 하대웅전을 지어 약사불 한 분을 모셔놓았다는...

 

다른 설은 원래 두 개의 절이 있었는데

합쳐져서 대웅전이 두 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또 다른 설은 전화로 인해 나중에 하나를 더 지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데,

이곳 장곡사 대웅전에는 약사불과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또 장곡사에는 탑도 부도도 보이지 않는다.

그 또한 미스테리...

상하대웅전의 앉은 방향도 달라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 (靑陽 長谷寺 上 大雄殿)

 

보물 제162호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4

 

장곡사는 칠갑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후기 보조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상대웅전은 하대웅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상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 안쪽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그 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섞여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의 짜임수법이 특이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제58호)와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제174호) 등 귀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장곡사 상대웅전

 

왼쪽부터 철조아미타불좌상,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靑陽 長谷寺 鐵造藥師如來坐像 및 石造臺座)

 

국보 제58호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 상대웅전(보물 제162호) 안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으로, 나무로 된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거대한 사각형의 돌로 만든 대좌(臺座) 위에 높직하게 앉아 있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아담하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둥글고 단아한 모습이다.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편이지만 양감이 풍부하지 않고 탄력적인 부피감도 줄어 들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고 있으며, 무릎 위에 놓인 왼손에는 약항아리가 얹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싼 옷은 느슨하게 처리되었고, 옷주름 또한 드문드문 표현되었다.

4각형의 대좌는 불상보다 훨씬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중·하 3단 형태의 이 대좌는 하대가 넓고 높은 반면에 중대와 상대는 상대적으로 낮고 작은 편이다. 바닥돌은 매우 넓은 편인데, 사방 모서리에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어 불상을 모시던 공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새기고 각 모서리에는 귀꽃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중대의 각면에는 큼직한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광배는 원래 돌로 되었을 것이나 파손되어 조선시대에 나무광배로 대체한 것 같다. 광배 중심부에는 꽃무늬, 주변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어 신라말과 고려초에 유행하던 광배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특이한 탑 모양의 대좌와 감실형의 구조, 그리고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 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뛰어난 불상으로 평가된다. (출처 : 문화재청)

 

가장 오른쪽의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가장 오른쪽의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가장 오른쪽의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靑陽 長谷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및 石造臺座)

 

보물  제174호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의 상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삼각형에 가까운 작은 얼굴에는 긴 눈썹과 가는 눈, 작은 코와 입 등이 표현되어 다소 세속화된 모습이다. 어깨는 넓지만 볼륨은 약화되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는데, 드러나 있는 오른쪽 어깨가 너무 소홀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이는 비로자나불만이 취하는 독특한 손모양으로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의미를 지닌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원래의 것이 아니라 석등 대좌를 가져다 놓은 것으로 불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색한 모습이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머리광배·몸광배 안에 꽃모양의 장식이 채색되어 있다. 광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채색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옆에 놓여 있는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제58호)의 광배와 같은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얼굴, 빈약한 체형, 허술한 오른쪽 어깨의 처리 등에서 9세기 중엽 비로자나불 양식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과 거의 같은 유형의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가운데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가장 왼쪽의 철조아미타불좌상

 

 

상대웅전의 연화문 전돌 바닥

 

 

응진전

 

응진전

 

상대웅전에서 내려다본 하대웅전 외 건물 배치 모습

 

 

 

 

상대웅전에서 내려다본 하대웅전 외 건물 배치 모습

 

 

 

상대웅전과 응진전 

 

삼성각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신 전각

 

삼성각에서 본 상대웅전

 

상대웅전과 응진전

 

상대웅전

 

 

 

운학루까지 내려와서 본 장곡사 전경

 

2013.07.2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