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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안양 삼막사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안양 삼막사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삼막사삼층석탑은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의 침입이 있었을 때

삼막사 승도인 김윤후가 적장 살리타(살리타이, 撒禮塔)를 살해하고

싸움에서 이긴 것을 기념한 탑이라 전한다.

 

살리타는 몽골의 장군으로

1231년 몽고의 사신 저고여가 고려 사람에게 피살되었다는 이유를 대며 쳐들어왔다가

귀주에서 박서 장군에게 패하였다.

다시 개성 성의문까지 쳐들어왔고,

고려 조정의 제의로 화해를 맺고 철수.

이후 고려가 서울을 강화로 옮기고 싸울 뜻을 보이자,

이듬해인 1232년 다시 쳐들어와 처인성(지금의 용인)을 공격하다가

삼막사 승려인 김윤후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였다.

 

다음은 삼막사삼층석탑에 대한 문화재청 설명이다.

 

 

삼막사 선실 뒤편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삼막사라는 절이름에는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 원효·의상·윤필 3대사가 관악산에 들어와 장막을 치고 수도하다가 그 뒤 그곳에 절을 지어 이름을 이와같이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탑신의 몸돌에만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이 있고,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다. 꼭대기에는 1979년에 보수한 머리장식이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고,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에 맞선 삼적사 승려 김윤후가 싸움에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문화재청)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41-54 삼막사 소재

 

 

2012.05.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