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서희 장군 묘
서희는 고려 초기의 외교가이다.
거란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993년),
조정에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서희의 담판으로 무사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소손녕은
고려가 신라에서 일어났고
옛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을 현재 거란이 차지하고 있으니
고구려가 거란의 영토라 이야기했다.
또한 거란과 땅을 연접하고 있으면서도 바다 건너 송을 섬기고 있다는 점을 들고
서경(평양) 이북의 땅을 떼어 바치고 조빙을 닦으면 무사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뒤를 이어 이름도 고려며
거란식의 논리라면 거란(요나라)의 동경(랴오양=요양)도 고구려 땅이고
거란과 교류하지 않는 것은 고려와 거란 사이에 여진족이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서희의 외교로 소손녕은 물러났고,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강동6주에 성을 쌓아
이 지역을 다시 우리 영토로 편입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강동6주는 흥화진(의주), 용주, 통주(선천), 철주(철산), 구주(구성, 귀주), 곽주(곽산)이다.
여주는 서울 가까이 있어서 자주 지나다니는 곳인데도
이곳엔 한번도 들른 적이 없었다.
올 봄 산수유를 보러 다녀오는 길에 들르게 되었는데,
주차장도 잘 마련되어 있고 산을 오르기도 적당하여서
산보삼아 다녀오기 알맞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도 기념물 제36호
경기 여주군 산북면 후리 산 53-1번지
정민공 서필의 묘
서희 묘 아래로 부친인 정민공 내외의 묘가 새단장되어 있다.
묘역에서 내려오며 본 풍경
가로수 길 사이 왼쪽 아스팔트길 바로 옆이 주차장이고,
오른쪽 가운데 건물이 재실이며,
재실 앞쪽으로 두 개의 비석이 보인다.
재실과 비석
일반 재실과는 다른, 현대적인 건물의 모습이어서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서희와 서필 부자를 기리는 비가 나란히 서 있다.
2012.04.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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