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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대구 근대문화골목 투어 : 3.1만세운동길

대구 근대문화골목 투어 : 3.1만세운동길

 

대구에도  3.1운동의 숨결이 깃든 곳이 있다.

  

큰장(서문시장)으로 이어지던 3.1운동길

 

 

안내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구의 3.1운동은  3월8일 오후에 일어났다.

이날 거사에 동참키로 한 많은 계성학교,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보 학생들은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동산병원 솔밭길을 이용하여 예정된 큰 장(구 서문시장)안 강씨 소금집 앞으로 접근해 갔다.

동산병원 언덕 소나무 숲은 대구 3.1운동 성공에 말없이 이바지 한 비밀 통로 구실을 했던 것...

지금은 그 옛날의 우거진 소나무 숲도 그 속에 있었던 오솔길도 다 사라지고 없다.

당시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애국학생들의 발자취도 땅에선 찾을 길 없다.

그러나 그들의 발자취는 땅 밑에서 큰 진동으로 남아 지금도 크게 숨쉬고 있다.

대구시는 이 길을 '대구 3.1운동 길'이라 이름지어 3.1정신을 후세에 기리 전하고자 한다.

비좁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 길에서 일제의 침략과 수탈로 피폐해진 우리 민족의 참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3.1운동길이라 명명된 길, 90계단

 

 

90계단 옆 벽에 붙은 사진 자료들...

3.1운동과 근대기 대구의 역사가 담겨 있다.

남성정 예배당(현 제일교회)

대구 3.1운동 당시의 건물 모습.

2월 24일경 서울에서 밀명을 가지고 대구로 내려온  이갑성이

이 건물 반지하실에서 개구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대구 3.1운동 의지를 모았단다.

 

고종황제의 운구가 장지로 떠난 후 서울 대한문(덕수궁) 앞에서 만세와 시위가 일어나다.

 

계성학교

대구 최초의 미국 선교사인 아담스 목사가 사택으로 사용하던 곳.

3.1운동 당시 계성학교 학생들이 이 건물 지하실에서 독립선언문을 등사하였단다.

  

신명학교

1919년 3월 8일 대구 3.1운동에 교사 및 전교생 40여 명이 거교적으로 참가하였고,

학생들은 2주 구류를 당한 후 훈방되었단다.

 

천황당 못 자리를 메워 서문시장 형성

앞에 보이는 주택은  미국 선교사가 세운 사택이고,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동산병원의 효시인 제중원이란다. 

 

상인들은 순종황제국장일 기간에 백립을 쓰고 시장(서문시장)에 왔단다.

순검들이 시장에서 상인들을 감시하고 정보를 듣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현 계성학교에서 본 서문시장의 모습

서문시장이 신식시장으로 발전되어가는 모습이다.

멀리 나무가 많은 곳이 동산 외국인사택...

 

대구고보

교장이 일본인이고 교사 중에도 일본인이 많은 관립학교였지만

전교생 약 200여 명이 3.1운동에 참가하였고,

징역 6월에서 1년의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교남기독청년회

대구선교지부가 청년 선교를 위해 1914년에 지은 건물.

이 건물 안에서 교계 청년들이 모여 교남기독청년회를 조직,

대구 3.1의거 시 전 회원이 참가하였단다. 

 

계산성당과 대구 전경

성당 앞쪽 와가는 안중근 의사가 강연했던 당시 교육기관 해성재.

동그라미로 표시된 2층 기와집은 당시 신부 사제관.

성당 앞으로 흐르는 내천은 대구 유일의 빨래터로 달성공원쪽으로 연결된다.

 

 

 

 

 

이전한 대구제일교회가 90계단 옆에 우뚝 서 있다.

 

2012.01.19(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