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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唐津 靈塔寺 金銅毘盧遮那佛三尊坐像)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唐津 靈塔寺 金銅毘盧遮那佛三尊坐像)

 

   영탑사에 도착하여 보물 불상부터 찾았으나 대웅전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대웅전 밖으로 나오니 옆 건물(나중에 보니 처마 아래에 영탑사라고 쓰여진 현판이 보였다.)에서 걸레질을 하는 분이 나오길래 얼른 물었더니 자기는 잘 모르니 방에 계시는 주지스님께 여쭤 보라는 것이었다. 염치를 무릅쓰고 들어가니 아~ 거기에 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는 게 아닌가~~~! 분실의 우려 때문에 따로 모셔둔 것이라고 하였다. 일단 삼배를 하고 촬영 허락을 구하였다. 멀리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허락해 주셔서 찍긴 했는데, 유리장 안에 모셔진 데다가 불빛이 어려 촬영 상태가 영 좋지 않다. 

 

보물 409호

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하리 560 영탑사

 

영탑사는 신라 말엽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믿기는 어렵다. 이 불상은 분실을 우려하여 경찰지서에 안치시켰다가 다시 영탑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연화대좌 위에 놓여 있는 삼존불로서 도식화되기는 하였으나 당시의 훌륭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본존불의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는 큰데 그 가운데서 장엄구가 조식(彫飾)되어 있다. 보안은 방형으로 되어 있고 눈은 내려 뜨고 있으며 입은 작게 표현되어 대체로 풍만한 형식이다. 귀가 길고, 목에는 삼도가 나타난다. 결가부좌한 이 불상은 상반신이 짧아서 불안하게 보인다. 무릎 높이는 상반신에 비해 낮고 가슴도 평면적이며, 특히 상반신을 둔중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수법은 가슴에 보이는 수평적인 군의(裙衣) 표현과 함께 조선시대의 목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두 손은 가슴에 들어 지권인(智拳印)을 하였는데 왼손은 아래에 두고 오른손은 위로 놓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통견의 법의는 무겁게 처리하였으며 옷주름은 배에 몇가닥 띠를 졸라 맨 세가닥 선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도식화되어 보인다. 대좌는 상∙중∙하대를 갖춘 8각대좌의 전형양식인데 상대는 4각형이며, 파상형의 의습이 내려져 있는데 종선평행의 옷주름은 도식적이다. 중대는 8각인데 각면의 안상속에 꽃무늬가 있으며 전면의 한 개는 부러져서 없어졌다. 하대 복연은 산형문으로 보일 만큼 변해버렸고 그 아래 8각부에는 각면마다 안성 속에 꽃무늬를 마련하고 있다.

좌∙우협시불은 동일한 수법을 보이고 있는데 머리에 쓰는 삼산보관은 따로 만든 것이며 그 안의 보계는 높이 솟아 있고 보발이 길게 어깨까지 내려온다.
보안은 여성적으로 부드러우며 가슴의 목걸이 장식은 유난히 크다. 허리를 잘록하게 하였고 천의를 두른 것이 몇가닥 띠로 허리를 잔뜩 졸라맨 것처럼 보이게 했으며 그 반대로 배는 불룩하게 하여 띠매듭을 장식하였다. 특이한 양식은 이 보살들의 대좌를 본존중대에서 뻗어 나온 두가닥의 연줄기 위에 만든 것이다. 이 상대는 본존대좌와 동일한 양식으로 고려시대 불상연구에 하나의 획을 긋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이 안치된 곳이다.

분실을 우려하여 이곳에 따로 모셔 놓았다.

 

2011.04.02(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