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임충민공 충렬사(2010.12.25.토)
임충민공 충렬사는 단호사 바로 이웃한 곳에 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인지라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추운 날엔 집에 들어앉아 쉬는 게 최고'라며 투덜거리는 옆지기를 달래가며 경내로 들어섰다. 유물관을 돌아나오는데, 마침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보여서 체면은 세웠다고나 할까...
경내 유물관에서 본 추련도가 인상깊었고, 어제달천충렬사비와 그의 부인 정렬비가 나란히 있어 눈길을 끌었다.
임경업 장군
조선 인조 때의 명장으로 이괄의 난에서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 명나라와 합세하여 청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김자점의 모함으로 죽음.
임충민공 충렬사는
사적 제189호(1969.11.21 지정)
충북 충주시 단월동 385-1 소재
충민공 임경업(1594∼1646)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숙종 23년(1679)에 사당을 세웠고, 1706년에 장군에게 충민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영조 3년(1727)에는 사당 이름을 충렬사라 했다.
임경업 장군은 선조 27년(1594) 충주에서 태어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다시 쌓아 국방을 강화하는 등 나라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명나라를 숭상하던 장군은 인조 30년(1642)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위협을 받게 되자 명군과 협력해 청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계획이 탄로나 청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청나라는 장군에게 여러 제의를 하면서 포섭하려 했으나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1646년 국내의 ‘심기원의 모반 사건’에 억울하게 연관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피살되었다.
현재 충렬사에는 장군이 사용했던 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사당 앞 왼쪽에는 장군 부인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부인완산이씨 정렬비’가 있다. (문화재청 자료)
주차장쪽에서 본 충렬사의 모습
임충민공유적정화기념비
유물전시관
유물전시관 내 추련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0호(2009.04.10 지정)
충북 충주시 단월동 385-1 소재(임충민공 충렬사 유물전시관)
임경업 장군의 보검으로 용천검과 추련도가 있었는데 용천검은 전쟁 시 직접 쓰던 검이었으나 6.25때 분실되었다고 한다. 추련도가 남아 있는 단검의 유일한 유물로 평상시 보호용으로 애용한 보검으로 알려져 있으나 관련된 문헌은 남아있지 않다.
현재 충렬사 유물전시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칼과 칼집 모두 양호한 상태이다. 도신은 철, 손잡이와 칼집은 목재, 목재를 고정시키는 장식은 황동과 동으로 되어 있다. 또한 칼 코 등은 얇은 철판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그 위에 주석·납으로 합금하여 도금하였다. 도신 좌우측면에 명문이 남아 있다. 보관함은 후대에 제작한 것이다.
秋蓮刀라는 칼의 이름은 이 검에 새겨진 싯귀에서 따온 것이다. 秋蓮, 즉 가을 연꽃은 다른 연꽃이 피지 않을 때의 연하게 핀 꽃, 즉 지조가 있는 대장부를 상징한다고 본다.
2005년 7월 15일부터 동년 9월 9일까지 보존처리를 실시하여 보존상태가 양호한 장시도이다.
이 秋蓮刀 양날에는 다음과 같은 검명시(劒銘詩) 28자가 새겨져 있다.
時呼 時來 否在來 시절이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
一生一死 都在筵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 것이 모두 여기 있도다.
平生 丈夫 報國心 대장부 한평생 조국을 위한 마음뿐이니
三尺 秋蓮 磨十年 석자 추련검을 십년동안 갈고 갈았도다.
이 추련도는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장군이 애용하였다고 전해지는 보검으로 역사적, 기술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큰 유품이며 보검의 상태 또한 양호하여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도신에는 명문이 있어 문화재로서 지정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크기 : 총길이 101.4cm/ 폭 6cm/ 갈날길이 86.7cm (문화재청 자료)
어제달천충렬사비(왼쪽)와 임충민공 부인 정렬비(오른쪽)가 모셔진 비각
어제달천충렬사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2호(2006.10.04 지정)
충북 충주시 단월동 385-1 충렬사 내
비문은 정조가 지었다.
전면 상단에 좌행으로'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라 전각(篆刻)하였는데 비제 다음 바로 본문을 쓰고 끝에 이 비문의 서자와 전자를 쓴사람을 밝히고 있다. 자헌대부 예조판서겸 직제학 이병모(李秉模)가 글을 쓰고 이조판서 윤동섬(尹東暹)이 전서를 썼다.
어제달천충렬사비각
임충민공 부인 정렬비
청이 명나라를 공격할 당시 임충민공은 명과 일동하여 청의 계획을 저해하였다. 이를 탐지한 청은 임충민공을 체포하여 청으로 압송하던 중 충민공이 탈출하자 그의 부인을 잡아 심양 옥에 가두었고, 부인은 남편의 충절을 욕보일 수 없다며 옥중에서 자결했다.
1747년 (영조 23년) 임충민공의 부인인 완산이씨의 정렬을 기리기 위해 충주 현감 한덕필이 세웠다.
임충민공 부인 정렬비각(오른쪽)
충렬사 입구
충민공 임경업장군 유상
2010.12.2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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