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초기적석총(2010.12.08.수)
아침에 잠시 눈발이 날렸었다... 그리고는 오락가락~~~
오후에 잠시 볼 일 보고, 저녁 약속 시각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백제고분군에 잠시...
전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해질녘의 도심 고분군 풍경도 그런대로 정겨웠다.
사적이건만 몇몇 사람들이 운동하러 나온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긴 그렇게라도 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한 일......
3호분 적석총
늦은 단풍이 반겼다...
앉는 자리가 돌...
적석총군
내원외방형묘
1호분
5호분 봉토분
토광묘 2기
보존을 위해 원형에는 방수시설을 하고, 그 위에 원형 모양 그대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안내 자료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백제초기적석총은 사적 제243호(1975년 5월 27일 지정)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 61-6 소재
백제가 한강 하류역에 위치한 한성(漢城)에 도성을 정한 후 서기 475년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형성된 백제 전기 고분군으로 백제의 매장 풍습과 축조 당시 문화ㆍ정치ㆍ사회 등에 관한 백제사의 여러 가지 내용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유적이다.
표고(標高) 20m 정도의 남북 방향의 얕은 뚝 모양의 대지 위에는 1917년 당시만해도 60기 이상의 적석총이 남아 있는 등 돌이 많았기 때문에 '돌마리'라고 불리었다고 하며, 석촌동이란 지명은 서울특별시 관할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생긴 것이란다.
이 고분군에는 막돌ㆍ포갠 돌 등을 섞어 쌓아 분구를 축조한 방형단축(方形段築)의 적석총(積石塚)을 비롯하여, 즙석(葺石)을 덮고 흙을 쌓아 분구를 축성한 봉토분, 지표에 장방형 토광을 파서 묘광을 만든 토광묘, 그리고 내원외방형(內圓外方形)을 이룬 고분 등 구조형식과 축조시기를 달리하는 고분 8기가 있다.
이중에서 사적 제243호로 지정되어 보수ㆍ정비된 것은 제3ㆍ4호분이며 모두 적석총(돌무지무덤)이다. 제1ㆍ2호분 및 내원외방형분 등 3기는 파괴가 극심하여 하단부의 일부만 남아 있고, 토광묘 2기는 원형을 보존하기 위하여 흙을 덮고 그 위에 모형 토광묘를 만들어 놓아 백제 전기 고분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제3ㆍ4호분은 방형단축의 분구라든가 큰 자연석을 비스듬히 세워 놓은 지탱석 등 분구의 구조형식이 고구려의 기단식 적석총(基壇式積石塚)과 동일함에 따라, 이 시기에 백제와 고구려가 밀접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분군의 보수·정비 공사는 1983년 3월에 착수하여 1991년 6월에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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