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 - 2005.07.30~31 가족 모임. 화성과 대부도~
시어머님과 시동생, 시누이 가족... 대부도, 수원화성, 행궁, 융건릉
[융건릉]
* 융릉
헌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1744년(영조 20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장조가 세상을 떠난 뒤 혜빈 정조 즉위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렸고, 뒤에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황후에 추존되었다. 남편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자서전적인 사소설체로 적은 [한중록]을 남겨 궁중문학의 효시가 되었다.
융릉은 합장릉으로 동,서, 북 3면에 곡장을 두르고, 봉분은 모란과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을 둘렀는데 난간석은 생략되었다. 그러나 방위 표시를 위해, 병풍석 위에 꽃 봉오리 모양의 인석에 문자를 새겨 넣었다. 봉분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2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하였는데, 추존 왕릉임에도 무인석까지 배치한 점이 중요하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안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정자각까지는 두 사람이 걸을 수있는 폭의 신도와 어도로 구분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융릉은 누가 보아도 능 조영에 정성을 들인 정조의 효심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건릉은 합장릉으로 동,서,북 삼면의 곡장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다른 상설내용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 하였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 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안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홍전문에서 정자각까지는 신도와 어도로 구분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신문 밖으로 능의 수호, 관리를 위한 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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