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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보령] 토정비결의 저자인 이지함 선생의 묘

[충남 보령] 토정비결의 저자인 이지함 선생의 묘


< 2016.11.26~27 보령 여행 >

* 제 1일 : 김좌진장군묘-청소역-신경섭고택-화암서원-남포벼루

(해물칼국수)-남포읍성-남포향교-상화원-대천해수욕장-(갈치조림)

* 제 2일 : (할매국밥)-대천해수욕장-대천항-토정 이지함 선생 묘

-도미부인 사당(정절사)-충청수영 해안경관전망대-선림사

-(손칼국수)-충청수영성-보령읍성-보령리 오층석탑-보령향교



(2016.11.27. 일)



내 기억 속에도 신년 초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끔 신년 운수가 어떤가~하고

나도 신문을 보거나 한 적이 있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토정비결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렇다고 내가 토정비결을 신뢰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재미로 보는 새해 운수~~~

생각만 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그 또한 추억의 일부가 된 걸 보니

세월이 그만큼 많이 흘러 시대가 바뀌었을뿐만 아니라

이제는 새해가 다가와도 마냥 즐겁지만은 아닌 나이가 되었나 보다.


토정 이지함 선생 형제와 존비속 묘역



넙적바위

토정 선생의 돌배로 전해지는 바위


토정 선생의 초상과 시비




토정 이지함 선생 형제와 존비속 묘역 안내도


토정 이지함 선생 형제와 존비속 묘역


토정 이지함 선생 형제와 존비속 묘역


가운데 뒤로 보이는 묘가 이지함 묘



문화재자료 제320호 이지함선생묘 (李之函先生墓)


◦ 이지함(李之菡)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호는 토정(土亭)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맏형 지번(之蕃)과 화담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공부하였음.

◦ 천문(天文)․지리(地理)․의약(醫藥) 등에 능통하였으며,

토정비결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벼슬하기 전 한때 마포강변의 흙집 위에 정자를 짓고 살면서

스스로 호를 토정(土亭)이라 하였고,

어염상고(魚鹽商賈)로 많은 곡식을 마련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였음.

◦ 평생 벼슬을 사양하다가

1573년(선조6)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되어

포천현감이 되어서는 백성의 가난해결을 위한 경제적 방안을 상소하였고,

임진강 범람을 예견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제하였으며,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지어 빈민을 구제하는데 힘쓰다가

 1598년 재임 중 순직하였음.

◦ 그리하여 우리나라 실학(實學)의 효시(嚆示)로 알려지기도 하는데,

1686년(숙종12) 보령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주벽(主壁)으로 배향(配享)되었고,

1761년(영조37)에 문강공(文康公)의 시호(諡號)를 받았음.

◦ 고만(高巒)에 위치한 묘역은

선생과 그의 형제와 존․비속의 14기 묘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선생의 학문과 전해지는 여러 일화로 인하여 명당자리로 인식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곳임.


(출처 : 문화재청)


토정 이지함 묘

봉분 둘레 10m, 높이 1.6m.

비신은 높이 132㎝, 너비 52㎝, 두께 17.8㎝,

전면에 ‘土亭先生李公之墓 恭人完山李氏俯左’라 음각되어 있다.


토정 이지함 묘

유언에 따라 비문은 간략하고

문인석도 아주 조그마하며 매우 검소하다.

생전에 미리 터를 정해두었다고도 전해지며,

모친의 상을 당한 삼형제가 선영의 묘를 이장할 자리를 찾다가

이곳이 명당임을 알고 썼다고도 한다.


토정 이지함 선생 형제와 존비속 묘역


토정 이지함 선생 형제와 존비속 묘역


토정 이지함 선생 형제와 존비속 묘역

(2016.11.27.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