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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전북 익산] 여산휴게소에는 시조시인과의 만남 쉼터가 있습니다.

[전북 익산] 여산휴게소에는 시조시인과의 만남 쉼터가 있습니다.

 

 

2013.03.23(토)

호남고속도로 하행선 방향인 익산의 여산휴게소에는

시조시인인 가람 이병기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쉼터가 있습니다.

작은 동산에는 그의 약력과 시비, 산책길, 팔각정 등이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휴식처가 되고 있네요.

이병기님의 시에 곡을 붙인 '별'을 흥얼거려 봅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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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휴게소 주차장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 동산에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휴게소 건물 오른편에서 팔각정으로 통하는 길.

 

 

 

  

 

 

가람 이병기(1891. 3. 5 전북 익산~ 1968. 11. 29 익산)

 

시조시인이며 국문학자.

일제강점기에 시조부흥운동에 앞장섰고

시조뿐만 아니라 국문학·서지학 분야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본관은 연안. 호는 가람(嘉藍 또는 伽藍)·가남(柯南).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3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그후 전남남양·전남제2·여산공립보통학교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고문헌 수집, 시조연구 및 창작을 시작했다.

조선어연구회를 조직.

'시조회'(詩調會)를 창립해 이를 '가요연구회'(歌謠硏究會)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확장.

1939년부터 〈문장〉에 〈한중록〉·〈인현왕후전〉 등을 쉽게 풀이해 연재.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검거된 후 함흥형무소에서 1년 가까이 복역하고

1943년 출감 후 낙향하여 농사와 고문헌 연구에 몰두했다.

6·25전쟁중 고서(古書)를 트럭에 실어 날라 고향에 보관한 일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서울대교수 역임 및 여러 대학에서 강의.

1952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1956년 중앙대학교 교수, 〈국어국문학〉에 논문 〈별(別) 사미인곡〉·〈속(續) 사미인곡〉발표.

1962년 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고향에서 요양하다 1968년 사망,

장례는 전라북도 예총장(藝總葬)으로 치러졌다.

전주시 다가공원에 가람시비가 세워져 있다.

주요저서로는 《가람시조집》·《국문학개론》·《국문학전사》·《가람문선》 등.

(다음백과사전 인용)
 

 

 

 

팔각정

 

 

 

 

 

 

  

팔각정 뒤 밭의 매화나무에 꽃잎이 한두잎 열리고 있었다.

 

 

 

 

 

 

 

 

 

 

 

 

 

2013.03.23(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