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403호 포천 반월성 (抱川 半月城)
양주 장흥쪽에 모임이 있는 날, 딸아이를 교회에 데려다주며 나선 길...
모임 때까지 시간이 어중간하여 포천 아트밸리나 들를 심산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는지라 몇 곳을 더 들르게 되었다.
사실 반월성엔 갈 생각을 못 했었는데...
반월성은 산 아래로 포천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길이 1km 정도로 산책하기 딱 좋은 거리... 무너진 성곽을 깨끗이 보수해 놓아서 지자체의 수고가 느껴졌고...
사실 산성 둘레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산보삼아 주위에서 놀러온 학생들의 모습, 가족들이 몇 팀 보였다.
우리는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성곽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청정 자연 속에서 자라는 쑥도 한 움큼 뜯고...
봄이지만 그동안 한기마저 느껴야 했던 시간들을 잊기에 충분한 날이었다.
아래 내용은 문화재청 자료이다.
포천시 군내면에 있는 산성이 있는 자리로 길이는 1,080m이다.
산성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쌓았다고 전해지나,
조사결과 고구려 때 쌓은 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러 책에 고성(古城), 산성, 반월산성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대동지지』를 통하여 광해군 10년(1618)에 고쳐 쌓고,
인조 1년(1623)부터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연려실기술』, 『포천군읍지』, 『견성지』에서도
돌로 쌓았다는 기록과 함께 여러 가지 당시 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성의 옛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시설물로는 남쪽과 북쪽의 문터,
성벽 바깥쪽에 사각형 모양으로 덧붙여 만든
치성 4개소, 건물터 6곳, 배수시설이었던 수구터, 장수의 지휘대였던
장대터,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세웠던 망대터 등이 있다.
※ 포천반월성지 → 포천 반월성으로 명칭 변경(2011.07.28 고시)
경기 포천시 군내면 청군로 3290번길 19 외 (구읍리)
반월성에서 내려다본 풍경
포천시민대종이 보인다.
반월성에서 내려다본 포천
구전에 의하면, 동 반월산성은 궁예가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94년도에 지표조사를 실시(조사기관 : 강남대 한국학연구소 및 단국대 사학과)하였고,
'95-'97까지 발굴조사 실시(단국대학교 박물관)결과 고구려때 축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길이는 1,080m(북고남저, 서고동저)이고,
시설물로는 문지 2개소(남, 북문지), 치성 4개소(동, 남, 서, 북서치), 건물지 6개소,
우물지, 수구지, 장대지, 망대지 2개소가 있다.
문헌상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각종 지지류에 '고성(古城)', '산성(山城)', '반월산성(半月山城)',
'청성(靑城)'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성지(고성)(城池(古城))이 현의 북쪽 1리에 있고,
성산은 사방으로 갈라지고 가파르며 여기에 옛성이 있고,
둘레가 1930척이며, 우물이 2개소이고,
광해군 10년(1618)에 영평에 감영을 두고 이 성을 수축하였으며, 중군을 설치하였고,
인조 원년(1623)에 혁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연려실기술, 별집 17권, 변어전고에는 성산고성이 현 북쪽1리에 있고,
돌로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포천군읍지에는 반월산성은 돌로 쌓은 것으로,
둘레가 1937척이고, 가운데 우물이 2개소 있고, 사방으로 갈라지고 가파르며
광해군 무오년(1618)에 산성을 개축하여 주진으로 삼았고,
중군을 설치하였다가 계해년(1623)에 혁파하였으며
지금은 폐해졌으나 수축하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견성지(堅城誌)의 기록에는 고성(古城)은 관아 뒤의 반월산에 있다.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937척이다.
언제 처음 축성하였는지 알 수 없다.
가운데 세 개의 큰 우물이 있다.
사방으로 갈라져 있으며 가파른데, 천여명을 충분히 수용할 정도이다.
광해군 무오년에 판관 이성구(判官 李聖求)가 옛 터를 개축하였을 때 구리 숟가락과 쇠솥이 발굴되었다.
숟가락은 자루가 길고 굽으며, 솥은 형체가 좁고 길었는데,
몇 천년이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빛깔이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폐해졌으나 개수하지 못하였다.
감호 양만길(鑑湖 楊萬吉)의 집이 산성 북쪽에 있다.
시에 이르기를, 『산 앞의 무너진 성가퀴는 옛 청성 터, 뿔피리는 늘 저녁 경치 개이기를 재촉하고,
파루를 알리는 두어 피리소리 산 그림자 속에서 들리며, 들구름 다 걷히자 저녁놀 밝아지네』라 하였다.
이 시로써 보건대 성 가운데는 옛날에 장영(將領)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 자료)
아래는 반월성 아래 산자락에 위치한 청성문화체육공원의 모습이다. 군내면 선정비군 충혼탑 면암 최익현 선생 동상 포천 출신인 최익현을 기리고자 이곳에 동상을 세운 모양이다.
2012.04.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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