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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과 후불도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 보물 제915호

 

 

법주사의 전각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한 건물로 보물 제915로 지정되어 있다.

전각 안의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후불도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6호이다. 

 

 

속리산 기슭에 있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지었고, 혜공왕 12년(776)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벽암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내부에 모신 삼존불은 벽암이 다시 지을 때 조성한 것으로 가운데에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 왼쪽에 보신(報身)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이 있다.

이 건물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佛典) 중 하나이다. (문화재청)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 보물 제1360호

 

법주사에 모셔져 있는 이 삼불좌상은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불상, 오른쪽에 석가여래상을 배치한 삼불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비로자나불상은 네모진 얼굴에 건장하면서 굴곡이 없는 평판적인 몸체와 무릎을 하여 괴체적인 느낌을 준다. 왼손은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은 대의 자락이 팔목에서 대칭되게 흘러내려 장식적이다.

아미타불상은 본존불과 거의 동일한 유형의 불상으로 왼손은 가슴에 올리고 오른손은 배에 두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다.

석가여래상은 비로자나불상·아미타불상과 거의 같은 체형, 얼굴 모습 등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이 흔히 취하는 항마촉지인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한편 아미타불상과 석가여래불상은 손모양과 불상의 성격이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옷 차림법이 마치 판에 박은 듯한 양식 특징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장대한 체구에 비하여 동안이며, 옷주름을 두텁게 표현한 이 불상은, 조형성이 탄탄하여 임진왜란 후의 새로운 조형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불상 안에 넣어둔 유물들이 대부분 도난당했으나 남아있는 연기문(緣起文)에 의하면, 조선 인조 4년(1626)에 조성되었으며, 그 후로부터 121년이 지난 조선 영조 23년(1747)에 불상에 다시 금칠을 하였음을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초반의 불상연구에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실내 촬영금지라 멀리 밖에서...

 

아래 두 장의 사진은 법주사 사이트 자료임 

 

사진 왼쪽부터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대웅보전 후불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6호

 

이 탱화는 법주사 대웅보전 소조삼불좌상(보물제1360호) 후불정화로 모시고 있는 그림이다.

명문에 의하면 錦湖堂 若效가 제작한 것으로 제작연대는 1897년 전후인 것으로 추측된다. 노사나불,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후면에 각 1점씩 배치되어 있으며 특이하게 사천왕탱화 2폭이 분리되어 걸려 있으며 3차례에 걸쳐 수리된 기록이 남아있다.

법주사 대웅보전의 높은 불단 위에 봉안된 소조삼존불좌상의 후면 벽에 걸려 있는 5폭의 후불탱화이다. 본존인 비로자나불도, 좌우협시인 아미타불도 2폭, 그리고 삼존불상 좌우 양쪽에 사천왕도 2폭 등 모두 5폭으로 상태가 양호하다.

? 法住寺 大雄寶殿 後佛圖 가운데 가장 먼저 그려진 것은 1897년에 그려진 향우측의〈阿彌陀佛圖〉와 〈四天王圖〉중 東方天王과 南方天王이다. 이 불화를 그린 이는 奉化인데, 錦湖堂 若效가 같은 해 법주사에 그려 봉안한 〈八相圖〉의 각 장면에 등장하는 如來尊像과 기본형이 일치하며, 특히 陰影法과 渲染法을 병용한 서운의 채색 표현방식이 동일하다.

? 1917년에 그려진 불화는〈毘盧遮那佛圖〉이다. 이 불화는 錦湖堂 若效의 제자인 普應堂 文性을 비롯하여 永星夢華·蓮庵敬仁·孝庵在讚·佛尊 梵華竺林이 그린 것으로 불·보살 각 존상 안면의 양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음영법, 어색한 그림자 표현 등에 文性 및 그 문도들의 화법이 잘 반영되어 있다.

? 1925년에 그려진 불화는 향좌측〈阿彌陀佛圖〉와〈四天王圖〉중 西方天王과 北方天王이다. 이 두 폭은 강원도에서 화업을 시작하여 경기일대를 비롯, 전국을 돌며 불화를 그린 개성이 강한 화사 古山堂 竺演의 작품이다.〈四天王圖〉와〈阿彌陀佛圖〉상단 권속들의 안면이 용주사와 전등사〈神衆圖〉를 비롯하여 古山堂 竺演의 여타불화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음영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불화는 2006년 보수하면서 특히 푸른 청색을 많이 쓰고 가칠하여서 원래의 고풍스러운 맛이 많이 없어져 보인다.

法住寺 大雄寶殿 後佛圖 일괄은 각각 제작시기가 다른데다가 근대화사로서 명성을 알렸으며, 최근 근대불교회화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세 화사들에 의해 그려졌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근대 불화계의 일부 畵師들에게 크게 선호되었던 서양화법 수용과 그에 따른 표현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재료는 면포이다.

조성연대 및 화사는 다음과 같다.

? 비로자나불도〈中央〉: 大正6년(1917년), 普應堂 文性
? 아미타불도〈向左〉 : 佛紀2952년(1928년), 古山 竺演
? 아미타불도〈向右〉 : 建陽2년(1897년), 奉化
? 사천왕도 〈向左〉 : 佛紀2952년(1928년), 古山 竺演
? 사천왕도 〈向右〉 : 建陽2년(1897년), 奉化

法住寺 大雄寶殿 後佛圖 및 법주사 경내 전각들의 後佛圖가 錦湖堂 若效와 그 門徒들에 의해 제작된 사실은 이미 불화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록 근대에 해당하지만 제작화사들의 높은 인지도와 문화재·학술연구대상으로서의 가치 또한 격상하고 있다.(문화재청)

 

아래 사진들은 문화재청 자료임

 

 

 

 

 

 

 

2011.11.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