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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2009.01.31 (토) 김포 한하운 시인 묘소

2009.01.31 (토) 김포 한하운 시인 묘소

 

한하운 시인

한센병 환자로 알려진...  본명은 태영.

<파랑새> <보리피리> 등의 시를 썼다.

이북이 고향인 시인은 고향 가까이에 묻히고 싶어 했단다.

그의 묘소는 장릉 옆 김포공원묘지 서183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그의 시를 읽곤 했던 터라

우여곡절 끝에 시인의 묘소를 찾았지만,

그러나 초라하기 그지없는...

 

 

 

 

 

< 한하운의 시들 >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사(故鄕事)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放浪)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 <보리피리> 전문 -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天安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千里 먼 全羅道길 

- <全羅道 길> 전문 -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올시다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이올시다 버섯이올시다 
 
다만 버섯처럼 어쩔 수 없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목숨이올시다 
 
億劫을 두고 나눠도 나눠도 
그래도 많이 남을 罰이올시다 罰이올시다. 

- <나> 전문 -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季節 앞에서 
겨웁도록 울다 가는 청춘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 번 밖에 없는 自殺을 아끼는 것이요 
 
- <봄> 중에서 -

 

 

 

눈 여겨 낯익은 듯한 女人 하나 
어깨 넓직한 사나이와 함께 나란히 아가를 거나리고 내 옆을 무심히 지나간다. 
 
아무리 보아도 
나이가 스무 살 남직한 저 女人은 
뒷모양 걸음걸이하며 몸맵시 틀림없는 저 ……누구라 할까 …… 
 
어쩌면 엷은 입술 혀끝에 맴도는 이름이요!
어쩌면 아슬아슬 눈감길 듯 떠오르는 追憶이요!
 
옛날엔 아무렇게나 행복해 버렸나 보지?
아니 아니 정말로 이제금 행복해 버렸나 보지?


- <女人>전문 -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 <파랑새> 전문 -

 

 

손가락 한 마디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에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목숨

 

쓰레기통과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

밤을 새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죽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꿈틀 만져진다.

 

배꼽 아래 손을 넣으면

37도의 체온이

한 마리 썩어가는 생선처럼 뭉클 쥐어진다.

 

아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어머니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신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신

말이 없는 어머니.

 

 

自畵像


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이 굳어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飽滿症이냐.


한때 나의 푸른 이마 밑

검은 눈썹 언저리에 매워본 덧없음을 이어


오늘 꼭 가야 할 아무데도 없는 낯선 이 길머리에

쩔룸쩔룸 다섯 자보다 좀더 큰 키로 나는 섰다.


어쩌면 나의 키가 끄으는 나의 그림자는

이렇게도 우득히 웬 땅을 덮는 것이냐.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

얼른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의 한 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하늘이 부끄러워

민들레꽃 이른봄이 부끄러워.

 

새로는 돋을 수 없는 빨간 모가지

땅속에 움돋듯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계절 앞에서

겨웁도록 울다가는 청춘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요.

 

 

何雲


나 하나 어쩔 줄 몰라 서두르네

산도 언덕도 나뭇가지도.


여기라 뜬 세상

죽음에 주인이 없어 허락이 없어

이처럼 어쩔 줄 몰라 서두르는가.


매양 벌려둔 저 바다인들

풍덩실 내 자무러지면

수많은 魚族들의 원망이 넘칠 것 같다.


썩은 육체 언저리에

네 헒과 균과 悲와 哀와 愛을 엮어

뗏목처럼 창공으로 흘러 보고파진다.


아 구름 되고파

바람이 되고파


어이없는 창공에

섬이 되고파.

 

관세음보살상

푸른 觀世音菩薩像
침묵속 자비의 열반

서라벌 천년을 미소하시는
인욕 유화의 상호
말쑥한 어깨
연꽃 봉오리의 젖가슴
몸에 몸은 보드라운 균제의 선에 神音이 스며서

유백색 가사는
몸을 휘어감어 가날프게
곡선이 눈부신 살결을 보일락
자락마다 정토의 평화가 일어 환락이 사르르

청초한 눈동자는 天空의 저쪽까지
생사의 슬픔을 눈짓하시고
대초월의 자비로
神來의 悲願으로
상계혼탁한 탁세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시고
정토 왕생시키려는 후광으로 휘황하시다

돌이
無心한 돌부처가
그처럼
피가 돌아 생명을 훈길 수야 있을가

갈수록 多情만 하여
아 - 문둥이 우는밤
번뇌를 잃고
돌부처 관세음보살상 대초월의 열반에

그리운 情 나도 몰라

生生 世世
귀의하고 살고 싶어라.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사 향

 

내 고향 함흥은
수수밭 익는 마을
누나가 시집갈 때
가마 타고 그 길로 갔다

내 고향 함흥은
능금이 빨간 마을
누나가 수집어할 때
수수밭은 익어갔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