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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대적광전 앞의 삼층석탑과 석등을 본 후 대적광전에 들어갔다.

철조비로자나불 치고는 매우 큰 모습에 놀랐다.

지금껏 본 철불 중 가장 큰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

도피안사에서 본 것은 크기도 크기려니와 불대좌까지 온전히 남아 있어서 놀라웠는데,

보림사의 것은 불상의 크기가 커서 감동이 밀려왔다. 

또한 남아 있는 불상 중 철로 만든 첫 불상이라니 더 감격스러웠다.

문화재에 대한 예로 선 채로 잠시 합장을 하고 마침 아무도 없어서 사진을 찍긴 했지만 급한 마음에 마구 찍어서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와 생각하니 왜 그리 서둘렀나 싶다. 온전하게 한두 장만 찍었으면 될 것을~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 보림사 대적광전 내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의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로 만든 불상으로,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잃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불상의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858) 무주장사(지금의 광주와 장흥)의 부관이었던 김수종이 시주하여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어서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달걀형의 얼굴에는 약간 살이 올라 있다. 오똑한 콧날, 굳게 다문 입 등에서 약간의 위엄을 느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다소 추상화된 모습이다.

통일신라 전성기(8세기)의 불상에 비해 긴장감과 탄력성이 줄어들었고,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 앞에서 U자형으로 모아지며, 다시 두 팔에 걸쳐 무릎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옷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지만 탄력을 잃은 모습이다. 이런 형태의 표현은 신라 불상에서 보여주던 이상적인 조형감각이 후퇴하고 도식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9세기 후반 불상 양식의 대표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은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이 작품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여 당시 유사한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걸쳐 유행한 철로 만든 불상의 첫번째 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문화재청)

 

 

급한 마음에 셔트를 누르기 바빠서 사진 상태를 확인하지도 못하고...

돌아와서 보니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2011.12.2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