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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주 미륵리사지 기타

 

충주 미륵리사지(彌勒里寺址)

 

사적 제317호(1987.07.18 지정)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8 소재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리사지는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굴사원터이다.

거대한 돌을 이용해 석굴을 쌓은 후 불상을 모셨으며, 위에 목조건물이 있었던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조사결과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연대를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추정한다. 석불입상(보물 제96호)·5층석탑(보물 제95호)·석등·당간지주 등 중요한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을 슬퍼해 금강산으로 가는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돌에 마애불을 만들었고, 태자는 이곳에서 석굴을 지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절터이며, 석굴사원으로서 방식은 다르지만 석굴암을 모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옛 기록에 전하는 계립령과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북향으로 펼쳐진 사지이다. 여기에 일찍이 석굴사원이 경영되었으나 오래 전에 소실되어 현재는 석조물만 남아 있다.
이 미륵리사지 내에는 보물 95호인 5층석탑과 96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지방 유형문화재 19호인 석등과 33호인 3층석탑이 있다. 이곳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며 석불이 있는 석굴의 방형의 주실은 가로 9.8m, 세로 10.75m의 넓이이며 높이 6m의 석축을 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상을 봉안하였다. 석축 위에는 지금은 없어진 목조 건물이 있었으며 전당은 목조로 된 반축조석굴이다.
모든 조영계획은 석굴암을 모방하였고 규모가 웅장한 반면에 퇴화과정이 역력한 석굴이라 하겠다. 본 사지는 1977년과 79년 두차례에 걸쳐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이 이루어져 그 윤곽이 다소 드러나게 되었고 1982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발굴한 바 있으나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고 발굴 당시 미륵대원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어 삼국유사에 미륵대원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연 스님이 살았던 그 이전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것이 확실히 고증되므로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관련 유물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찰은 고려초기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후기인 고종 때 몽고병의 침입으로 소실된 듯하며 사찰 이름은 미륵대원이었다. (충주시청 자료)

 

 

미륵리절터 안내도

 

 

 

연화문 당간지주 

 

 

기타 석재 

 

 

미륵대원터

 

 

미륵리 삼층석탑을 지나서 하늘재 오르는 길에서 만난 불두 

 

 

 

2010.12.25(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