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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강원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과 원공국사 승묘탑비

 

 

원주 거돈사지(2010.11.21.일)

 

 

법천사지에서 나와 거돈사지로 향하였다.

지름길인 산을 넘어 가는 길이 통제중이어서 우회하여 정산으로..

절터 바로 옆에서 군인들이 텐트를 치고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호국훈련인 모양이다.

집에서는 다들 귀하게 자랐을 요즘 아이들인데, 쌀쌀한 날씨에 고생이 되겠다..

녀석은 이번 훈련에 참여하지 않으니 좀 편하려나~~~

 

거돈사지는

사적 제168호 (1968.12.19 지정)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89 소재

신라시대 절터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기에 확장·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중문터, 탑, 금당터, 강당터, 승방터, 회랑 등이 확인되었는데,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2층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문지 북쪽의 3층석탑(보물 제750호)은 처음 세워질 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탑의 동쪽에는 원공국사 지조(930∼1018)를 위한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호)가 있는데,

1025년 최충이 문장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탑비와 함께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이라 불리는 부도가 있었는데

현재는 경복궁 뜰 안에 옮겨 놓았다.

거돈사는 고려 초기 불교계의 중심이었던 법안종의 주요 사찰이었지만,

고려 중기 천태종이 유행하면서 천태종 사찰로 흡수되었다.

거돈사는 신라말 고려초의 절터로서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다.

 

 

거돈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750호(1983.12.27 지정)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88  소재

신라시대

 

거돈사 옛 절터의 금당터 앞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형태로,

기단을 이루는 밑돌·가운데돌·맨윗돌이 각각 4매로 이루어진 특징이 보인다.

위층 기단은 남·북쪽에 무늬없는 긴 돌만 세우고

동·서면에는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돌을 끼워 맞춘 방식이다.

즉, 남·북쪽에서 보았을 때 동·서면에 세운 석재의 두께가 자연스럽게 기둥 모양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였다.

5단의 밑받침을 둔 지붕돌은 두꺼우면서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곡선을 이루고 있다.

처마는 직선을 이루는데 끝부분에서의 들림이 경쾌하여 통일신라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고,

그 위에 놓여진 연꽃 모양의 보주(寶珠)는 최근에 얹어 놓은 것이다.

탑의 조성연대는 2단을 이루는 기단구조와 기둥 모양의 새김,

5단의 지붕돌 받침 등의 수법으로 보아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 터에 있는 민가 우물가에는 탑 옆에서 옮겨왔다는

배례석(拜禮石:탑 앞에 놓여 예불을 드릴 때 향을 피우던 곳)이 놓여 있다.

 

 

 

 

 

 

금당지

 

 

불대좌

 

 

탑재를 모아 둔 곳.

 

 

 

원공국사 승묘탑비

 

보물 제78호

원공국사 지조(930∼1018)를 위한 원공국사승묘탑비는

1025년 최충이 문장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탑비와 함께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이라 불리는 부도가 있었는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정산로에서 본 절터 담장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서 긴 역사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