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국보 제221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평창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평창]국보 제221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평창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동종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상원사의 문화재로 문수전에 소장되어 있다.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서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고 한다.
오른쪽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2호 상원사목조보살좌상 (上院寺木造菩薩坐像)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2호 상원사목조보살좌상 (上院寺木造菩薩坐像)
평창 상원사 문수전 목조동자상(3구) (平昌 上院寺 文殊殿 木造童子像(3軀)
문수동자상과 목조보살좌상 주변에 있는 작은 목조동사상 3구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1호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평창 상원사 문수전 목조동자상(3구)
(문화재청 사진)
(문화재청 사진)
< 문화재청 설명 자료 >
고개는 약간 숙인 상태이며 신체는 균형이 잡혀 있다.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 올린 동자머리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볼을 도톰하게 하여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러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넓은 어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가로질러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신체의 윤곽에 따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거의 맞닿을 듯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왼쪽 다리를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대좌(臺座)는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우견편단(右肩偏袒)에 영락(瓔珞)을 늘어뜨린 보살형(菩薩型) 양식인데, 보살상과 다른 것은 보관(寶冠) 대신 머리를 양쪽으로 묶어 동자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는 점이다. 납의(衲衣)로 허리띠를 질끈 묶어 동자의 천진성(天眞性)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며, 볼과 입가에서 동자의 천진성이 잘 나타나 있다.
대좌(臺座)는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동자상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하여 광배(光背)도 마련하지 않았다. 수인(手印)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의 하품하생인(下品下生印)과 같이 하고 있다.
이 동자상은 고려불상(高麗佛像)의 양식에서 조선(朝鮮) 전기(前期) 양식으로 전개되는 양식적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조선(朝鮮) 전기 조각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오대산(五臺山)은 신라(新羅)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중국(中國)의 오대산문수신앙(五臺山文殊信仰)을 받아들인 이래 문수도량(文殊道場)으로 유명하다.
이같은 전통적인 문수신앙이 조선조(朝鮮朝) 세조(世祖)의 문수신앙을 낳게 하고, 세조(世祖)의 문수신앙 체험이 동기가 되어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을 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과 전설(傳說)로 미루어 알 수 있다.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50, 상원사 (동산리)
2012.06.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