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신흠 묘역과 신도비
광주 신흠 묘역과 신도비
양평 산수유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신흠 묘역...
신흠은 조선 중기 한문학의 대가로 호는 상촌(象村)이며 문집 상촌집을 남겼다.
그의 장남이 선조의 부마가 되었으니 선조와는 사돈지간이다.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 계곡 장유 (鷄谷 張維), 택당 이식(澤堂 李植)과 더불어
월상계택(月象鷄澤)으로 불리며 조선의 4대 문장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시조들을 학창 시절에 외운 기억이 난다.
냇가에 해오랍아 므스 일 서 있난다(냇가의 해오라기(백로)야, 무슨 일로 서 있느냐)
무심한 저 고기를 여어 므슴 하려난다(한가이 헤엄치며 노는 저 고기를 노려 무엇하겠느냐)
아마도 한 물에 있거니 잊으신들 어떠리(같은 물에 있으니 서로 잊고 지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 시조는 계축사화(계축화옥, 계축옥사)를 빗대어 읊은 시조이다.
같은 조정에서 서로 다투어 무엇하겠느냐는 뜻을 담고 있다.
계축사화는 조선 광해군 때 정인홍, 이이첨이 중심이 된 대북파가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에라(산촌이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구나)
시비를 여지 마라 날 찾을 이 뉘 이시리(사립문을 열지 마라 날 찾을 이가 누가 있겠느냐)
밤중만 일편명월이 긔 벗인가 하노라(밤중의 한 조각 밝은 달이 그 벗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신흠이 영창대군과 김제남(영창대군의 외조부) 등을 제거한 계축화옥에 연루되어
춘천에 유배되어 있을 때의 고독한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145호
경기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 산 12-1번지 소재
신흠 묘역과 신도비 만나러 가는 길
먼저 신도비를 만나게 된다.
무덤가에 핀 할미꽃...
신도비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묘역을 만나게 된다.
주변에는 잣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산길을 오르는 도중에 만난, 아직은 이른데 먼저 마중나온 진달래가 반가워...
상촌 신흠 묘
부인과의 합장묘이다.
문관석과 장명등
묘역에서 내려다본 주변 풍경
2012.04.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