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보은 법주사 선조대왕 어필 병풍과 주서무일편 병풍

낭만방랑자 2011. 11. 12. 08:46

 

 

선조대왕 어필 병풍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조선 선조는 속리산 법주사의 부속 암자인 중사자암(中獅子菴)을 즐겨 찾았으며, 암자 남쪽에 원당(願堂)을 짓고 곡식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선조는 여러 사람에게 글씨를 하사했으며 서산대사(西山大師)에게 묵죽(墨竹)과 제찬(題讚)을 친필(親筆)하여 하사한 일도 있다고 한다. 선조대왕어필병풍은 영조 34년(1758)에 왕이 ‘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을 하사할 때 ‘주서무일편병풍(周書無逸篇屛風)’과 함께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나 기록은 찾지 못하였다. 이 병풍은 제1폭 서두에 전자(篆字)로 ‘선조대왕어필(宣祖大王御筆)’이라 표시되어 있으며 대자(大字) 연면초(連綿草)인데 더러 결자(缺字)가 있으나 유창호방(流暢豪放)한 달필(達筆)이다. 시구(詩句)의 내용으로 보아 선조가 산중에 머물 당시 노년의 외로운 분위기를 읊은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는 초서에 능했다고 하며 모두 8폭으로 한 폭당 규격은 가로 67cm, 세로 190cm이며 글씨는 초서체(草書體)의 붓글씨이고, 구성은 오언절구 네 수이다. 비록 목판본의 병풍이기는 하나 조선중기의 우리나라 목판인쇄문화와 서예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지하법당 앞 전시장에 보관되어 있는 선조대왕의 어필 병풍이다.

 

 

 

 

 

 

주서무일편 병풍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9호

 

 

‘주서무일편병풍(周書無逸篇屛風)’은 「경서(經書)」의 「주서무일편(周書無逸篇)」을 서사(書寫)하여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제작연대와 서사자는 병풍에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제작연대는 영조 34년(1758) 이전으로 추정된다. 필체는 영조의 어필인 듯하며 모두 10폭이다. 글씨는 묵(墨)이 아닌 금분(金粉)으로 서사(書寫)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고려시대 이래로 각 시대마다 「경서(經書)」의 「주서무일편(周書無逸篇)」을 서사(書寫)하여 병풍을 만드는 사례가 많았다.
이 ‘주서무일편병풍(周書無逸篇屛風)’은 영조(英祖) 34년(1758)에 왕이 ‘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을 하사할 때 ‘선조대왕어필병풍(宣祖大王御筆屛風)’과 함께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나 기록은 찾지 못하였다.
이들 병풍과 지질(紙質)·표고방법 등 유사한 면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 주서무일편(周書無逸篇) 병풍(屛風)도 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병풍은 「서경(書經)」의 「주서무일편(周書無逸篇)」을 옮겨 적은 것으로 제작연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글씨는 묵을 사용하지 않고 금분으로 서사(書寫)한 영조의 어필인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의 옛 병풍으로 서예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보존 가치가 높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지하법당 앞에 선조대왕어필병풍, 신법천문도병풍, 주서무일편병풍 세 개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2011.11.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