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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상주]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알려진 상주 공검지(공갈못)

[경북 상주]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알려진 상주 공검지(공갈못)

 

 

 

공갈못 옛터임을 알려주는 비가 세워져 있다.

 

 

 

상주공검지 (尙州恭儉池)

 

경상북도  기념물  제121호

 

경북 상주시 공검면에 있는 저수지로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제천의 의림지(충북유형문화재 제11호)’,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공갈못이라고도 하는데

‘공갈’이란 아이를 묻고 둑을 쌓았기 때문에

‘공갈못’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예부터 공검지는 연꽃이 풍성하여

꽃이 만발하면 중국의 전당호와 견줄만 하다고 하였고,

이로 인해 ‘공갈못 노래’가 만들어져 전파되기도 하였다.

저수지의 규모는 둑의 길이가 860보이고,

둘레는 1만 6천 6백 47척이라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어,

그 규모가 웅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폐허가 되어 흔적만 남은 것을

1993년 확장공사를 벌여 수심 3.4m의 연못으로 조성하였다.

(문화재청 자료)

 

 

 

공갈못 입구의 공갈못 노래비

 

 

노래비 옆으로 바라본 공갈못

 

 

조그만 공검지 습지 관리사무소...

 

 

공갈못 옛터비

 

 

가을의 공검지는 연꽃도 지고 연밥도 보이지 않고

쓸쓸함만 가득하다.

 

 

상주 공검지는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단다.

 

 

 

 

 

 

공검지 주변에 세워져 있는 몇 개의 안내판을 보며...

 

 

 

 

이번에 가 보니 상주공검지역사관이 생겼다.

 

 

문이 닫혀 있어서 내부는 둘러보지 못하였고,

유리를 통해 안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우리나라의 4대 저수지에 관한 내용이 보였다.

우리나라의 4대 저수지로는 이곳 상주 공검지를 비롯하여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가 있다.

학창 시절에 외웠던 기억이 난다.

 

 

 

김제 벽골제 (金堤 碧骨堤)

 

사적 제111호.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최고의 고대 저수지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흘해왕 21년(330)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 8백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실제로 만들어진 때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 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21년(1143)에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 15년(1415)에 다시 쌓았다.

그러나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더 많다고 하여 없어지고 말았다.

지금 유적에는 일직선으로 약 3㎞ 정도의 제방이 남아있는데,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에서 이 둑을 농사짓는데

필요한 물을 대는 통로로 고쳐 이용하면서

그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제방의 북쪽에는 조선시대에 벽골제를 다시 쌓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세운 비석이 있는데,

닳아서 글을 알아보기 어렵다.

1975년에는 저수지 물의 양을 조절하던 수문이 있던 자리 2곳을 발굴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대규모의 높은 수준의 측량기술이 이용된 공사였던 것이 밝혀졌다.

벽골제는 단순히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라는데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당시에 이미 이러한 저수지 축조가 가능할 정도의

고도로 발달된 토목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에서도 획기적인 사실을 제공해 주는 유적이다.

 

 

밀양 수산제

 

경상남도  기념물  제102호 수산제수문 (守山提水門)

 

수산제는 경남 밀양에 있었던 관개용 저수지로서

원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추측된다.

『세종실록지리지』·『신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후대에도 여러 번 제방을 고쳐 쌓은 기록이 나타나는데,

임진왜란(1592) 이후에 황폐하여 이용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1928년까지 황토흙으로 된 제방의 일부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저수지는 논으로 변하였다.

이곳의 제방은 낙동강의 지류인 용진강이 범람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양수와 배수를 위해 수산리 산 524-1번지 부근 자연암반 밑으로 수문을 내었는데

그 수문의 흔적이 흙 속에 묻힌 채 지금도 남아있다.

 

 

 

제천 의림지

 

명승 제20호 제천의림지와 제림 (堤川義林池와堤林)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수리시설 중의 하나인 의림지(義林池)와

그 제방 위의 제림(堤林) 그리고 주변의 정자 및 누각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 역사적 경승지이다.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오랜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수리시설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 제천현지도(堤川縣地圖), 청구도(靑邱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

조선시대 고지도에도 자세히 나타나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조선후기 산수화가 이방운(李昉運)이 그린

서화첩「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에 나오는 명승지 8곳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단양사군(丹陽四郡 : 청풍, 영춘, 단양, 제천) 지역의 대표적 명소로 알려져 있다.

제림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소나무와 버드나무 숲으로 의림지와 역사를 같이 하고 있으며,

현재에는 아름다운 노송이 주종을 이루고

버드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함께 자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명승지로

주변의 영호정(映湖亭), 경호루(鏡湖樓) 등 정자 및 누각과

연자암, 용바위, 홍류동, 홍류정지 등 전통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적·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 관련하여 문화재청 자료를 찾아보았다)

 

 

 

2014.10.11(토)

 

[상주공검지]

경북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