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淸州新鳳洞百濟古墳群)과 백제유물전시관

 

청주 백제 유물 전시관

 

청주시 흥덕구 1순환로 438번길 9 (신봉동139-6번지) 소재

사적 제319호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에 세운 유물전시관이다.

신봉동백제고분군을 중심으로 인근의 유적과 청주의 초기 역사와 관련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내부 전시 자료 

 

 

청주 신봉동 고분군의 무덤모형들

 돌방무덤

 

 

 

 덧널무덤

 

 

 

널무덤

 

 

 

화장묘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淸州新鳳洞百濟古墳群)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은 사적  제319호

충북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 산7

 

청주시내를 남동에서 북서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무심천 서북쪽 기슭의 동쪽 비탈진 곳에 분포하고 있다.

107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는데 106기는 흙을 판 후 무덤을 쓴 널무덤(토광묘)이고, 1기는 널방과 널길을 가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다. 널무덤은 야산 전체에 걸쳐 분포하며, 봉분은 거의 깎여 나가 남아있지 않다. 출토 유물로는 여러가지 토기류·옥과 같은 장신구류·철로 만든 칼이나 도끼같은 무기류·말갖춤(마구류)과 그 밖의 숟가락 등이 나왔다. 90-1호 널무덤에서는 갑옷이 출토되어 백제철갑의 실물을 볼 수 있어 주목되고 있다.

신봉동 고분군은 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동안 만들어진 고분군으로, 대체로 4∼5세기경의 백제 고분군이라 할 수 있다.

신봉동은 백제의 동쪽 변방지역으로 다른 유적에서 볼 수 없는 마구류·무기류가 많이 출토되어,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돌방무덤은 서울지역의 백제 초의 것과 공주지역의 돌방무덤과 비교되는 자료로서 평가된다. 

 

[위치·분포(位置·分布)] 고분군(古墳群)은 행정구역상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 신봉동(新鳳洞) 산(山)7-1 일대(一帶)에 위치(位置)하고 있으며 이 지대(地帶)는 청주시내(淸州市內)를 남동(南東)에서 북서(北西)쪽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무심천(無心川)의 서북(西北)쪽 야산(野山)이고 고분군(古墳群)은 이 야산(野山)의 표고(標高) 103.8m 지점(地點)에서 동(東)쪽으로 비탈진 곳에 분포(分布)하고 있다.

[구조형식(構造形式)] 이 고분군(古墳群)에서 조사(調査)된 고분(古墳)은 모두 107기(基)인데 그 중 토광묘(土壙墓)는 106기(基)(82년도 14기, 90년도 92기)이고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은 1기(基)(82년도)이다. 토광묘(土壙墓)의 구조(構造)에 있어 분구(墳丘)는 거의 모두가 유실(流失)되어 간신히 분구기저부(墳丘基底部) 윤곽(輪廓)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편평(扁平)하게 되었거나 또는 현지표(現地表) 위로 약간 도드라져 있을 정도이며 묘광(墓壙)은 경사면(傾斜面)을 가로질러 수직(垂直)으로 파서 평면(平面)이 장방형(長方形)이 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구조형식(構造形式)의 토광묘(土壙墓) 중 유존상태(遺存狀態)가 양호(良好)한 것 몇 기(基)를 살펴보면 82-1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이 장방형토광(長方形土壙)의 한쪽 단벽(短壁)에 원형토광(圓形土壙)이 달린 특이(特異)한 형식(形式)의 것으로서 황갈색(黃褐色) 연질토기편(軟質土器片)이 원형토광(原形土壙)에서 드러나고 또 장방형토광(長方形土壙)보다 약간 깊은 점(點)으로 미루어 원형토광(圓形土壙)은 부장품광(副葬品壙)으로 보게 되며 이러한 구조(構造)의 묘광(墓壙) 어깨선 윗부분(部分) 전면(全面)에 돌을 덮었다. 묘광(墓壙)의 남북 길이 3.50m, 동서 너비 1m, 깊이 약 70∼80cm이다. 82-3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은 장축(長軸)을 남북(南北)으로 둔 장방형(長方形)이고 지형상 영향인지 서벽(西壁)이 동벽(東壁)보다 높으며 묘광(墓壙)의 크기는 길이 2.60m, 너비 80cm, 표토하(表土下) 깊이는 서(西)쪽이 70cm·동(東)쪽이 30cm이다. 이 토광묘(土壙墓)에서는 토기(土器)와 함께 마구류(馬具類)가 드러났다.

82-7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은 장축(長軸)을 남북(南北)으로 둔 장방형(長方形)이고 바닥은 남(南)쪽 반(半)이 북(北)쪽보다 약간 높다. 크기는 길이 3.05m, 너비 1.55m, 깊이는 어깨선에서 동(東)쪽 10cm, 서(西)쪽 40cm이다. 82-14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다란 장방형(長方形)이고 크기는 길이 3.60m, 너비 1.80m, 깊이 약 1m이다. 90-4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은 장축(長軸)을 남북(南北)으로 둔 말각장방형(抹角長方形)이고 네 벽(壁)은 어깨선부터 10∼30cm까지는 적갈색(赤褐色)·황갈색사질토(黃褐色砂質土), 그 아랫부분은 석비례층을 파고 들어갔다. 바닥은 석비례 위에 고운 마사토를 10∼13cm 두께로 깐 다음 황갈색진흙을 5∼8cm 두께로 깔았고 남(南)쪽 부분(部分)에서는 목관(木棺)을 썼던 흔적이 보였다. 묘광(墓壙)의 크기는 길이 2.70m, 너비 1.16m, 깊이 0.58∼1.10m이다. 90-1호분(號墳)(B지구(地區))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이 장축(長軸)을 동서(東西)로 둔 장방형(長方形)이고 풍화(風化)된 화강암반층(花崗岩盤層)을 수직(垂直)으로 파내려가다가 바닥으로 이어진다. 바닥에는 황갈색 찰흙을 깔고 냇 자갈돌을 한두벌 깔았으며 중앙부에는 목관(木棺)을 안치(安置)하고 네 벽(壁)과 목관(木棺) 사이에는 황갈색 흙을 채웠다. 이 토광묘(土壙墓)는 신봉동(新鳳洞)의 조사고분(調査古墳) 중 가장 큰 규모의 것으로서 어깨선의 길이 3.70m, 너비 1.80m, 깊이 0.50∼1.10m이다. 특히 이 토광묘(土壙墓)에서는 갑옷이 드러나 백제철갑(百濟鐵甲)의 실례(實例)에 접(接)하게 되어 주목(注目)된다.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인 82-1호분(號墳)은 동서(東西)로 약간 긴 구형(矩形)의 현실(玄室)과 현실남벽(玄室南壁)의 동(東)쪽에 치우쳐 달린 선도(羨道)로 이루어졌고 현실(玄室) 네 벽(壁)은 포갠돌을 수직(垂直)으로 쌓아 구축(構築)하였으며 천정부(天井部)는 파괴(破壞)되어 가구형식(架構形式)은 알 수 없다. 막돌을 깐 현실(玄室) 바닥에는 서벽(西壁)에 치우쳐 장방형(長方形)의 관대(棺臺)가 마련되었는데 포갠돌로 26cm∼30cm 높이로 쌓고 윗면에는 냇자갈을 깔고서 모래와 황토를 섞어 다짐을 하였다. 현실(玄室)의 크기는 동서(東西) 3.52m·남북(南北) 3.48m, 선도(羨道)는 현존 길이 85cm·너비 80cm, 관대(棺臺)는 남북(南北) 길이 2.50m·동서(東西) 너비 90∼95cm이다. 그리고 조사고분(調査古墳) 중 유일(唯一)한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이다.

[출토유물(出土遺物)] 유물(遺物)은 재질(材質)·용도별(用途別)로 나누어 놓으면 다음과 같다. 토기(土器)…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단경광구호(短頸廣口壺)·장경광구호(長頸廣口壺)·평저연질단경소호(平底軟質短頸小壺)·평저화분형토기(平底花盆形土器)·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병형토기(甁形土器)·완형토기(완形土器)·유개배(有蓋杯)·파수부배(把手附杯)·삼족부배(三足附杯) 등장신구류(裝身具類)…금동지환(金銅指環)·토제소옥(土製小玉)·마노소옥(瑪瑙小玉)·소옥(小玉)·동이식(銅耳飾)무기류(武器類)…철제대도(鐵製大刀)·철제삼엽환두대도(鐵製三葉環頭大刀)·철도자(鐵刀子)·철족(鐵鏃)·철모(鐵모)·철부(鐵斧)·철착(鐵鑿)·철겸(鐵鎌)·갑옷 등 마구류(馬具類)…말재갈·목심철판피등자(木心鐵板被등子)·안장복륜잔혈(鞍裝覆輪殘穴)·교구(교具)·철환(鐵環) 등기타(其他)…쇠낚시·청동(靑銅)숟가락·철정(鐵釘)·꺽쇠 등

[추정연대(推定年代)] 신봉동고분군(新鳳洞古墳群)은 어떤 한 시기(時期)에 축조형성(築造形成)된 것이 아니라 상당(相當)한 기간(期間) 동안 영조(營造)된 고분군(古墳群)임으로 대체(大體)로 이른 시기(時期)의 고분(古墳)은 4세기초(4世紀初)까지 축조연대(築造年代)의 상한(上限)을 올려볼 수 있고 그 하한(下限)은 5세기중엽(5世紀中葉)을 전후(前後)한 시기(時期)로 보고 있다. (문화재청)

 

2011.05.2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