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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청주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東萊府使宋象賢忠烈祠)

청주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東萊府使宋象賢忠烈祠)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덕구, 호는 천곡, 본관은 여산이다.

1576(선조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요직을 거쳤다.

1591(선조24)년 동래부사가 되었고,

1592(선조25)년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서 순절하였다.

소실도 그를 따라 순절하였다.

적장이 그의 충절에 감복하여 장사지내 주었다고 한다.

 

송상현 충렬사(충렬묘)

 

 

 

 

 

 

송상현 충렬사 정화기념비

 

 

송상현 충렬사

 

 

천곡기념관과 신사당 

  

 

신축한 사당 

 

 

 

 

 

천곡기념관 앞마당의 비

'君臣義重 父子恩輕(군신의중 부자은경 : 군신의 의가 중하니 부모의 은혜는 오히려 가볍다)'

 

 

천곡기념관  

 

 

 

 

 

천곡기념관 내부 자료들

 

부산에서 송상현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할 때 쓰임

 

 

송상현의 충절 저항 의지를 나타내는 말 '戰死易假道難'

임진년(1592년) 4월14일(음력) 오후, 부산진성과 다대포진을 함락시킨지 만 하루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의 수하들이 동래성 남문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쓴 나무패를 세웠다. 

'戰則戰矣(전즉전의 :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不戰則假道(불전즉가도 : 싸우지 않으려면 (명나라를 정벌하는) 길을 빌려 달라)

이를 본 동래부사 송상현은 다음과 같이 목패에 써서 성 밖으로 던졌다.

'戰死易假道難(전사이가도난 : 싸워서 죽는 것은 쉽지만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허술한 방책과 수백명의 군졸로 신식무기를 가진 수만명의 적을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죽음을 앞둔 송부사는 옆에 놓인 부채에 시 한 수를 남겼다.

'孤城月暈 列鎭高枕(외로운 성에 달무리지고 여러 진들은 단잠에 빠져 있네).

君臣義重 父子恩輕(군신의 의가 중하니 부모의 은혜는 오히려 가볍다).'  


 

 

혈선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송상현이 남긴 시 한 수가 전한다.

'孤城月暈

列鎭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


 

 

충렬공 시호 추증교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천곡수필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동래부순절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동래부순절도의 송상현의 북향요배 모습

 

 


의정부 좌찬성 추증교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부인 이씨 정경부인 추증교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강희 56년 치제문(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혈선발(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건륭 37년 치제문(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천곡선생집 활자본





 

 

동래보국충정도.

동래성이 함락되자 피신 권유를 거절하고 태연히 북향요배마친 후 부채에 하직 시 '孤城月暈 列鎭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을 남기고 의연하게 순절의 길로 나아가는 장면을 나타낸 그림이다.


 

 




 

송상현 충렬사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6호

충북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105 소재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선조 28년(1595)에 묘소를 동래에서 이곳으로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사당을 창건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송상현의 호는 천곡(泉谷), 시호는 충렬인데, 선조 9년(1576) 문과급제후 선조 24년(1591) 동래부사가 되었다. 임진란이 일어나 왜군이 동래성에 육박하자 군사를 이끌고 항전하다 왜병에게 살해되었다.

충렬사 뒷산에는 송상현의 묘소와 현종 원년(1659)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사당 입구에 선조 28년(1595)에 건립한 충신문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3개의 분합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마당 앞에 삼문을 세우고 주위에는 석축담장을 쌓아 보호하고 있다.

청주시에서는 천곡선생의 애국충절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2001년에 인근 부지를 확장 정비하여 전시관과 사당을 신축하였으며, 주변을 공원화하여 시민들이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이곳은 충렬공(忠烈公) 송상현(1551∼1592)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선쟁의 자(字)는 덕구(德求), 호(號)는 천곡(泉谷), 시호(諡號)는 충렬이다. 조선(朝鮮) 선조(宣祖) 9년(1576)에 문과에 급제한 후 군자감정(軍資監正) 등을 역임하고 선조 24년(1591)에는 동래부사에 임명되었다. 다음해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부사로서 동래성을 사수(死守)하기 위해 항전하다 순절(殉節)하였다. 광해군(光海君) 2년(1610) 공의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사당을 창건하였는데 그 규모는 3칸 팔작집이다. (문화재청 자료)

 

 

2011.05.28(토)